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7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41 - 278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北魏後期 洛陽에서 활동했던 西域人과 西域商品, 西域文化를 다루었다. 北魏後期 수도 洛陽에는 관리(鄯乾과 安吐根, 和安)와 武士, 皇帝의 후궁(于仙姬), 商人, 樂人, 舞人, 승려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西域人이 거주하였다. 『洛陽伽藍記』에 따르면 北魏後期 이후 洛陽의 인구는 10만 9천여 戶였다. 西夷, 즉 西域人이 거주했던 慕義里에 거주하는 1만 戶는 洛陽 전체 戶數의 9.1%에해당한다. 『資治通鑑』에 따르면 北魏의 수도 洛陽에 체류한 중앙아시아 출신 승려가 3천여 인이었고, 당시 北魏의 宣武帝가 永明寺 千餘間를 세워 이들을 거주하게하였다. 뿐만 아니라 景明寺에도 西域胡 沙門이 거주하며 수도하였다. 이처럼 北魏後期의 수도인 洛陽 인구의 10%를 상회하는 西域人들이 당시 洛陽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西域人들은 西域의 佛敎를 北魏에 전파하고 유리제품과 은세공품 등西域産 제품과 胡床․胡笳․琵琶 등의 樂器를 들여왔으며 西域의 雜技와 歌舞를유행시켰다. 北魏後期 수도 洛陽에는 西域人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이 거주하였다. 『洛陽伽藍記』 「城南」 宣陽門條에 따르면 永橋 남쪽에 金陵館․燕然館․扶桑館․崦嵫館 등 北魏에 歸附한 외국인들을 수용하는 四夷館이 있었다. 北魏에 귀부한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3년을 지낸 후에 南朝 출신(원문에는 吳人)은 歸正里, 北夷는 歸德里, 東夷는 慕化里, 西夷는 慕義里로 옮겨 거주하였다. 洛陽에서 출토된 陶俑을보면 洛陽에는 아프리카 흑인과 아라비아인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중앙아시아나 몽골고원의 유목민과 高句麗人들도 거주하였다. 이처럼 ‘국제도시’ 洛陽에서 거주했던 漢人이외의 다른 種族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문화와 습속을 유지하며생활하였다. 洛陽에 거주했던 西域人과 西域文化는 洛陽에 漢人과 漢文化만 존재했을 것같은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西域人과 西域文化는 胡人(유목민)들이 漢人과 漢文化에 일방적으로 傾倒되는 것을 막는 완충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洛陽에 살았던 북방의 유목민, 高句麗 등 만주와 한반도의 사람들, 南朝에서 귀화한 사람들, 중앙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 등 西域 사람들의 고유 문화도 다른 種族들에게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北魏의 胡人支配層이 일방적으로 漢文化만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種族의 문화를 섭취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洛陽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67)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