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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4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87 - 346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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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경기도 죽산군 남일면 금산리(현 안성시 일죽면 금산리) 광무양안과 토지조사부를 비교 분석하여 광무양전의 성격을 해명해 보고자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양안과 조사부의 개별 필지를 서로 연결한 다음 두 자료의 내용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광무양안과 토지대장(지적도 포함)은 계통이 다른 문서였다고 판단되었다. 광무양안은 정부의 필요에 따라 전형, 등급, 면적 등의 실상을 일정 정도 가공하여 기록했다. 따라서 양안을 통해 실제 전형, 등급, 면적 등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에 비해 조사사업 관련 문서는 여러 가지 내용을 실제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고 했다. 그래서 조사사업에서 작성한 문서를 통해 당시의 전형, 등급, 면적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광무양전은 양전 시작 지점, 양전방향 판단, 전형 파악, 등급 결정, 면적 산출 등과 관련된 작업 규정[세칙]을 마련하지 않고, 양전 실무자의 주관적 판단에 맡겼다. 그 결과 개별 작업과 관련된 기준은 양전 실무자에 따라 달랐다. 양전에서는 작업 과정은 양전 실무자가 장악하고, 결과는 국가가 장악하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토지조사사업은 조사 시작 지점, 전형 파악, 등급 결정, 면적 산출 등과 관련된 작업 규정[세칙]을 마련해둠으로써, 조사사업 과정에서 관리들의 주관적 판단이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고 하였다. 근대에는 국가가 양전 과정과 결과를 모두 장악한 것이다. 대한제국은 조선정부처럼 필요로 하는 양을 대략 정해놓고, 양전을 통해 이를 파악․확보하려고 하였다. 그에 비해 일제는 필요로 하는 양을 정해놓지 않고,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모든 것을 낱낱이 파악하여 지배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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