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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4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69 - 10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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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1225년 경에 신하국이던 서하와 형제관계를 맺고 그에 맞는 사절 의례를 제정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점차 패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 금은 어쩔 수 없이 대외정책을 수정해야 했고, 서하와도 그 관계를 ‘從’(君臣관계)에서 ‘橫’(형제관계)으로 선회시켜야 했는데, 이것은 동시에 금조가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하던 화이관의 파탄을 의미하였다. 이에 맞추어 서하에 대한 새로운 외교 의례가 마련되었고, 그 결과 「新定夏使儀注」(이하 「儀注」)가 제정되어 『金史』(권38 禮11)에 그 내용이 傳存한다. 다만 「儀注」제정으로부터 서하는 불과 2년 뒤에 멸망하기 때문에 양국이 형제관계를 유지한 것은 3년을 넘지 않으며, 따라서 「의주」가 金의 宮中에서 실제로 연출된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주」의 연구 가치와 의의가 매우 큰 점은 강조되어야 할 것 이다. 10~13세기 동아시아 각국에서 연출된 외교 의례(賓禮)는 宮中 의례를 중심으로 하며, 사료에도 외국사의 동향은 거의가 이 부분을 통해 나타난다. 하지만 외국사는 상대국에 체류하는 동안 客館을 숙소로 삼아 궁전에 출입할 뿐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는 상대국 관원들과도 교류하는 등 客館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길었고, 또 거기서도 다양한 의례가 연출되었다. 객관이야 말로 외국사가 現地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이지만, 당은 물론 송이나 요 측의 사료에는 그 정보가 제한적인 것에 반해, 유독 「의주」는 그 정황을 전하는 설명이 많으며, 이 점에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여기서는 특히 숙소에 入館한 西夏使의 일정이 제1일차부터 귀국에 오르는 제9일차까지 일자별로 소개되어 있어 그 활동의 大槪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의주」는 금 말기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서하와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그 이전부터 서하사에게 적용되어 오던 것을 다시 편집한 것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비록 ‘군신’에서 ‘형제’로 관계의 格이 바뀌었다 해도 금의 西夏使에 대한 응대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또한 「의주」에는 금이 서하는 물론 기타 고려와 송 등의 외국사에게도 적용했을 일반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었을 것이며, 나아가 「의주」를 통해서는 송이나 요, 고려 등 기타 동아시아 왕조에서도 베일에 싸인 객관의 정황을 추정하는 단서를 제공한다고보인다. 본문에서는 이상과 같은 의의를 갖는 「의주」를 분석해 金에 입국한 서하사가 어떠한 일정을 보냈는지를 확인하고, 또 체류 중에 그들이 통과한 여러 의례와 활동에 어떠한 원칙과 특징이 있는지를 발견해 정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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