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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6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45 - 294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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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후 조선의 정치를 흔히 ‘사림정치(士林政治)’라고 말한다. 그 시대의문턱을 살다간 유자광(1439~1512)은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한간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조대로부터 중종까지 5대에 걸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쏟아진 많은 부정적인 평가와 오명 때문인지,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그에 대한 외면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굳이 비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증오의 대상에 새로이 도전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은 유자광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만든 배경이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조선왕조의 개창 이후 상하·존비·귀천을 정당화한 유교적 명분론은 천첩의 아들인 서얼 유자광의 관직 진출과 정치 활동을 철저히 부정하고 거부하는 배타적논리로 기능하였다. 더구나 16세기이후 조선 정국을 주도한 뒤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사림의 정치이념은 훈구세력인 유자광을 도덕적 죄인으로 낙인찍어 역사의 감옥에 수감시킨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유자광에 대하여 근대 이후의 역사는물론이고, 현재도 여전히 부정적인 평가와 서사들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훈구나 서얼의 입장에서 반론이나 재검토를 시도해 보는 것은 15~16 세기 역사를 성격을 입체적이고도 균형적으로 판단하는데 기여하리라 여겨진다. 더구나 관찬사료나 문집에서 유자광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해석이 상당히 부정적인데 반해, 민간에서 전승되는 설화나 민담에서는 그를 오히려 긍정적 태도로 인식하는 사실도 유자광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이 글은 그 같은 문제의식 아래 유교적 명분과 사림의 정치이념이 갖는 일방적이고도 단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훈구와 사림의 관계를 바라보고 서얼 유자광의 삶과 행적을 재검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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