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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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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9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 - 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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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東夷傳에서 蘇塗를 세운 것이 浮屠와 비슷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 중국의 불교 전래 상황과 연관된다. 곧 西域의 佛敎로 이해했던 중국의 蘇塗 인식은 󰡔晉書󰡕 東夷列傳이 편찬되었던 7세기에도 지속되었다. 崔致遠의 소도 인식은 당시 중국에 유포된 ‘金人佛像說’ 및 三韓 認識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의 佛敎史를 정리했던 「智證大師碑」에서 蘇塗의 儀式은 불교의 제사에 견주어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며, ‘百濟蘇塗之儀’에서의 ‘백제’는 馬韓과의 역사적 연계사실보다는 당시 통일신라에 편입된 옛 백제지역 정도로 인식했을 법하다. 최치원의 소도 인식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는데, 蘇塗를 東方 佛敎의 기원으로 삼고 이미 西晉시대에 불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물론 삼한의 소도는 鬼神에 제사하던 중국 주변 종족의 고유 신앙의식 가운데 하나로 보았거나, 소도에서 大木을 세워 제사하는 의식이 滿洲의 立杆祭祀와 연관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는 최치원 이래 전승되던 전통적인 소도인식에서 일견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民俗學 방면에서 소도는 立木 또는 祭壇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東夷傳에 전하는 소도는 別邑과 결부되어 天君이 제사를 주관하는 신성공간으로 이해되었으며, 점차 神竿을 세운 聖域에서의 신앙의례 내지 종교의식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삼한 蘇塗信仰의 성격과 그 의의를 삼국의 祭儀 및 종교문화 속에서 접근하여, 소도 이후 그것을 계승한 흔적을 찾았다. 삼한시대의 신성지역으로서 소도는 불교 전래이후 寺刹이 대신하였으며, 소도의 불교적 변용은 불교와 기존 토착신앙과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종래 소도와 천군을 연결시켜 別邑의 신앙의례를 天君이 주관했던 것으로 보았다. 점차 천군과 별읍을 구별하여 천군은 國邑에서 상위의 天神제사를 주관하였고, 別邑에서는 巫적인 존재가 하위의 鬼神에 제사했던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蘇塗信仰은 본래 삼한 邑落 단위의 部落祭에서 발전하여, 小國의 성장으로 대두한 大國 단계에서 기존 읍락 별로 행해지던 信仰儀禮를 天神을 중심으로 하나로 묶은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소도인식의 계승작업은 소도의 역사적 의미를 그것이 포함되는 정치체계 속에서 이해하거나 사회발전 단계에 따른 제의의 변화과정 속에서 추구되어, 소도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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