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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5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49 - 7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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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紙의 주재료는 楮, 즉 닥나무이다. 이 점은 중국의 종이 원료가 麻紙였던 점과 다르다. 중국의 경우 漢代부터 唐代 이전 종이의 80% 이상이 麻紙였고, 민간에 전래된 唐나라 이전 서예 회화에 쓰인 종이도 대부분 麻紙였다. 제작방법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8세기 통일신라기 종이 유물을 분석한 결과, 종이 표면을 두드려 가공함으로써 먹의 번짐을 막는 도침법(搗砧法)을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搗砧은 종이 위에 먹을 떨어뜨리면 먹이 스며드는 속도가 느려질 뿐 아니라, 또 먹이 옆으로 번지지도 않는다. 특히 寫經을 할 때 글씨의 획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生紙가 아닌 熟紙가 필요했고, 닥피(楮皮)의 특성이 長皮纖維이기 때문에 도침(搗砧) 가공법이 熟紙를 제작하는데 가장 적합한 기술이었고, 우리나라에서 搗砧 가공법이 꽃피우는 원인이 되었다. 이 기술은 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꾸준하게 계승된 기술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은 고려시기 종이 생산의 주재료인 닥나무의 분포와 종이 공납의 실태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전해주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 초기에 닥나무의 식생조건을 갖춘 군현뿐만 아니라 종이를 공납한 군현은 <표 1>의 수치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닥나무가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 식생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자연조건 때문에 닥나무가 종이의 주재료로 이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시기 종이 생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왕실이나 중앙 관청과 朝貢品으로 사용된 질 좋은 고급종이는 소 생산체제에 편제된 紙所를 통해 대부분 공급되었다. 그러나 지소를 통해 공납되는 종이만으로 전체의 수요를 채울 수 없었다. 지방 관청에 종이 먹 등의 사무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급된 紙田의 존재가 바로그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공납제 방식으로 관청의 종이 수요를 감당하지못했기 때문에 관청에 紙田을 지급하여 그 소출에서 나온 비용으로 민간에서 생산된종이를 구매하여 수요를 충당하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종이가 생활의 필수품에 가까운 민간의 경우 주로 사원이나 가내수공업과 같은 민간수공업을 통해 생산된 종이를구매하여 그 수요를 충당했다. 따라서 고려시기 종이는 크게 두 가지 경로를 생산 유통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공품, 대내외 문서용 종이와 동아시아 세계에서 호평을 받은高麗紙와 같은 고도의 기술수준을 보여주는 질 좋은 종이는 대체로 소 생산체제의 일부인 紙所에서 생산되었다. 반면에 지방 관청, 사원과 민간에서 소비되는 종이는 사원이나 가내수공업 형태의 민간수공업에서 생산되었다. 이같이 고려시기 종이의 생산과유통과정은 소 생산체제하의 지소와 민간수공업의 2중적인 구조 속에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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