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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61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47 - 28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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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론 산문이 지닌 議題 설정의 기능이 현대의 언론과도 일정한 역할을 공유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본고는 16세기-17세기 議論 散文의 의제와 글쓰기를 통해 문학적 양상과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당대 적지 않은 문인지식인들은 다양한 지식의 體化를 통해 상대적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신흠의 학문관이나, 東海無潮汐으로 대표되는 지리적 고찰에서 그와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지식이 공존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었다. 둘째, 사유의 다원화와 시야의 확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의제를 산출해냈다. 철학적·문학적 논의는 물론, 국가의 안위와 백성의 구휼, 당대 부조리에 대한 비판, 풍수와 미신 타파 등의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또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개인의 사유와 감정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인데, 병에 대한 논의가 대표적이었다. 이것이 의제의 분석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다. 다음으로 글쓰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던 의론 산문의 문학적·사회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16세기-17세기의 의론 산문에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반추하며 그가 견지한 삶의 지향과 삶의 양상을 서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원인으로는 사회적 부조리에 의해 소외된 문인지식인의 속출, 16세기 중반부터 진행되었던 자기 고백적 산문의 대두를 들 수 있다. 둘째, 사회적 부조리의 성행으로 인해 신랄한 어조로 비판하는 글들이 적지 않게 쓰였다. 이와 같은 비판의 칼날은 왕조차도 피하지 못하였는데, 그 원인으로는 사회적 부조리 외에 신권과 왕권의 역학 관계 변화 역시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16세기-17세기 의론 산문의 작가들이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문제제기를 했거나 동일한 의제를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으며, 사회와 문학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글쓰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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