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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57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39 - 16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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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점산은 행정적으로는 양산, 김해, 부산 등에 소속되면서 변화를 겪어왔으나, 그 근원은 가락국에서 찾아야 한다. 칠점산은 삼분수와 그 주변의 다양한 지물들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였다. 많은 시인들은 이를 선계(仙界)로 그려내었다. 칠점산은 참시선인이 거문고를 타며 신선 같은 삶을 살았던 곳인데, 그는 거등왕의 부름에 초현대로 나아가 왕과 교유한다. 거등왕은 김수로왕의 창업에 이은 수성의 국가 제도를 마련하였으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준이며 화합의 바탕이 되는 음악이다. 참시선인은 거등왕과 함께 새로운 가락국을 열어주는 아침 햇빛과 같은 존재였으며, 그가 지냈던 칠점산은 그에게 그러한 생생력(生生力)을 제공해주는 근원이었다. 한편 칠점산이 칠점산인에게 생생력을 제공해주는 선계였다면, 초현대는 거등왕의 새 국가 건설을 위해 그가 생생력을 제공해주는 세속의 장소였다. 이러한 상대적인 장소로서의 칠점산에 대한 시적 표현은 고려 및 조선조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잘 보이고 있다. 그들은 칠점산을 절대적인 신선의 세계로 보아 세속을 벗어나 지향해야 할 세계로 그려내기보다 현실과 대척점에 있는 이상의 세계로 심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벼슬아치에게 있어서는 벼슬의 굴레요, 현실의 혼란을 목도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혼란이 잠자는 평화의 세계로서, 일상의 삶에 있어서는 마치 삶의 질곡이 사라질 듯한 세계의 심상이었다. 다시 말하면 시인들의 시는 모두 세속을 떠나 칠점산에 사는 참시선인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회한의 표현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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