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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51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 - 56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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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고려청자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간지명 청자의 등장, 도식화된 문양 등은 청자 변화의 구체적 내용이었다. 청자 변화의 원인은 주로 생산체계의 변화에 따른 대량생산과 소비의 확대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최근 고려분묘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의하면, 14세기 들어 청자의 출토량은 이전시기와 감소하거나 큰 변동은 없다. 대량생산에도 불구하고 분묘에서의 소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고려시대 분묘 유적의 출토품을 검토하였다. 지역성과 시기를 고려해 상주 청리, 청주 용암, 진안 수천리, 부산 덕천동, 안산 대부도 육곡, 단양 현곡리, 경주 검단리, 청도 대전리, 고양 더부골 고려 분묘 유적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같은 시기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청자가 주로 출토되는 지역과 청동기가 비교적 다수 출토된 지역이 있었다. 상주 청리는 청자만 주로 출토된 반면, 청주 용암유적에서는 다수의 동기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지역적 차이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11~13세기 중반까지 분묘의 부장품에는 청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동합․동발․동접시 등이 공반 출토되고 있었다. 셋째, 13세기 후반 이후 동기의 출토가 급증하였다. 14세기로 편년되는 분묘에서는 청자와 함께 다수의 청동기가 공반 출토되고 있었다. 따라서 분묘의 출토양상에 의하면 14세기에는 동기가 유행하였다. 당시 동기의 유행은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홍자번의 상소 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원간섭기 고려에서는 동기가 상당히 유행하고 있었다. 한편 동기 확산의 배경에는 중국 화폐제도의 변화와 지배층의 취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은 고래의 銅錢을 기축화폐로 사용하지 않고 은으로 지불 보증된 보초를 기축화폐로 삼았다. 기축화폐의 변화는 동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 결과 이전보다 자유롭게 동을 이용해 동기 혹은 銅像을 주조할 수 있게 되었다. 물질적 배경이외에 문화적 변화도 있었다. 새롭게 중국의 지배층이 된 몽고족은 유목민의 전통에 따라 자기보다는 금속기를 선호했고 고려 역시 이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고려에서는 자기가 아닌 동기를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산업의 쇠퇴와 자기의 질 하락을 가져온 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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