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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6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19 - 15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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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남아 있는 最古의 문집은 崔致遠의 『桂苑筆耕集』이다. 이후 고려 때 李仁老가 林椿의 사후에 임춘의 문집 『西河先生集』을 엮었다. 그 직후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문집의 체제를 갖춘 李奎報의 『東國李相國集』이 나왔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집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문집총간을 기준으로 볼 때 정 350집, 속 94집을 포함하여, 총 1,079종 1,078인(최치원 2종)에 이른다. 고려와 조선의 문집은 사회적 토대라 볼 수 있는 물질적 기반과 독서층, 가문의 요구와 사회적 요구 등 여러 요인의 연관관계 속에서 편집되고 판각되고 유통되었다. 문집의 체제와 원 자료의 수집 방식에 관한 고찰은 물론, 行卷・轉寫本・간행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가 한문학 연구의 대상이 된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집은 自編과 初刊 이후에 중간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시문을 망라하고 관련 문헌을 초록하여 완비하려는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또한 국가에서 恩典을 내려 문집을 완비하여 간행하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한편 문집의 편집은 여러 가지 체제를 취하였다. 주류를 이룬 것은 詩와 文을 분리하고, 시를 창작연대순, 문을 문체별로 편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를 취하지 않은 예도 상당수 있는데, 그러한 예외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또한 한국의 문집에는 年譜를 붙이고 교류 인맥의 관련 시문과 후대인의 평가문을 정리한 附錄를 붙이는 일이 많다. 본고는 鄭道傳의 『三峯集』을 예로 들어, 한국문집의 성립과 重刊 경위, 시문 등 저술 수록의 체제 , 연보 등 부록의 작성 방식을 살펴보았다. 정도전은 생전에 스스로의 시문을 편찬하고 또 문집을 간행하였는데, 사후에 아들이 문집을 再刊하고 이후 후손들이 그의 복권을 시도하여 문집을 重刊하였으며, 정조 때 이르러 복권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가시화되는 때에 奎章閣은 문집을 再編하였고 아마도 경상도 監營의 主宰로 대구에서 그것을 간행하였다. 『삼봉집』의 자편, 재간, 중간, 개간 경위는 근대 이전의 한국에서 문집 간행이 지니는 의미를 극명하게 예시한다. 근대 이전 한국의 문집은 完整性을 지향하고 저술의 망라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였지만, 편찬 의도에 따라 시문을 取捨하려는 경향도 지니고 있어서, 간행된 문집은 결락의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 衆體具備와 顯示意圖의 모순 ⓑ 樣式分類에 따른 情報集成의 限界 ⓒ 變格漢文 문장의 처리 등과 관련된 사항이 대부분이다. 『삼봉집』의 경우 ⒜ 道統 속에서의 位相 ⒝ 衆體의 구비 ⒞ 經國文章 ⒟ 華國文章에 초점을 맞추어 수록 시문을 선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삼봉집』은 재간과 중간, 개간에 이르기까지 편찬자 혹은 간행자들은 정도전의 저술을 具備하려고 하였지만, 원래의 저술이 수록되지 못한 예도 상당히 있고, 다른 사람의 글로 알려져서 문집에 수록되지 못한 글마저 있다. 『삼봉집』의 예에서 드러나듯, 한국의 문집은 完整性과 具備를 지향하였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求備’를 바랄 수 없는 결함을 지니기도 하였다. 한국 문집에 대한 연구는 이 점에 유념하여 輯佚을 시도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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