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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59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353 - 38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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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송자라 일컬어질 정도로 조선시대 후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숙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83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왔다. 제주도는 변방인 데다 조선시대 동안 출륙금지령 때문에 교육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따라서 정치적 실각으로 제주도로 유배 온 인물들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사대부는 정치인이자 교육자였기에 교육적 영향력도 상당했다. 송시열도 향교에 보관된 책을 빌려 적소에서 손자를 비롯한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을 벌였고, 시간적 여유를 활용하여 저술활동을 벌였다. 유배지의 한계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인들과 학문적 토론을 나눴다. 비록 제주도에 머문 시간이 100여 일에 불과하였지만 교학활동에 이바지한 바가 커서 서원 배향이 금지되던 시기에도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다. 귤림서원에는 김정을 비롯하여 김상헌, 정온, 송인수가 배향되어 있었는데 송시열이 배향되면서 제주오현이 확립되었다. 제주오현 배향은 제주교육사상사에서 도통의 계보를 확정 짓는 작업으로서 의의가 크다. 또한 송시열의 문인들이 행정가나 유배인으로 제주도를 찾음으로써 송시열을 기리고 교학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존중과 권진응은 조선 후기 인물성동이논쟁을 제주도에 알렸고, 김춘택은 저술활동을 통해 교육적 분위기를 높였다. 김정희는 송시열의 유배지를 찾아 시를 남겼고, 최익현은 독서, 저술, 교육 활동을 망라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제주도 교육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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