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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59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45 - 17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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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외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사』 판본은 모두 80여 종 정도이다. 그 판종(版種)은 활자본인 을해자(乙亥字)본과 목판본 두 종류인데, 목판본 『고려사』는 을해자본을 저본으로 하여 복각한 것이다. 문종 1년 8월에 편찬을 완료한 『고려사』는 『고려사절요』와 함께 단종 1년 4월에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이 때 『고려사』의 인쇄는 소량에 그쳤고, 그것도 궁궐에만 보관하도록 하여 반포되지 않았다. 『고려사』 초간본의 형태는 다만 세종대 이후 인쇄 경향과 『고려사절요』와 동시기에 간행된 점을 감안하면, 갑인자(甲寅字)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판식은 을해자본 『고려사』와는 달리 10행 17자의 행격을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는 간행되었지만, 반포되지 않음으로써 간행 직후부터 반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 같은 반포 요구에 따라 성종은 각종 사서(史書)를 을해자로 인쇄하는 과정에서 『고려사』의 인쇄와 반포를 약속했다. 이는 곧 실행에 옮겨져 성종 6년 말에서 7년 초에는 을해자본 『고려사』가 빛을 보게 되었다. 을해자본 『고려사』가 간행됨으로써 경연 과목으로 널리 활용되고 민간 유통도 활성화되어 지식인 사회에서 고려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쟁으로 수많은 서적들이 소실되거나 흩어지는 가운데 『고려사』 또한 그 피해를 면치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 광해군은 서적의 수집과 간행 등 문예 진흥책을 펼쳤는데, 서적의 간행은 주로 남아 있는 주자본을 저본으로 하여 목판본으로 복각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고려사』의 목판본 복각은 『용비어천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과 함께 광해군 2년 말부터 시작되어 5년 9월 이전에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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