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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6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87 - 22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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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儒生으로서 1901년 무렵 유학을 버리고 천주교에 입교한 뒤 月山公所의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며 공소의 교세를 크게 성장시킨 梁在根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본관이 남원인 양재근의 家系는 17, 8세기 이후 서천군 화양면 월산리에 집단적으로 거주하였으며, 이후 그의 가계는 정치․사회적으로 몰락하여 鄕班으로 전락하고,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빈궁하게 되었다. 그러나 24世 유생 양재근이 유학에만 몰두하지 않고 실용적인 의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명의로 이름이 크게 나 다시 부유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는 1900년경에 평생 동안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숨기고 몰래 신앙생활을 해 오던 어머니 김 바르바라의 유언을 받들어, 당시 향촌 사회에서 점차 권위를 잃어 가는 유학을 버리고 모두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어 1925년에 설립된 월산 공소의 회장으로 임명된 그는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널리 전파하면서 喪을 당한 가난한 교우들에게 장례비를 지원해 주고, 생계가 곤란한 교우들에게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 주는 등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하였다. 그 결과 교세가 크게 신장된 월산 공소는 1934년에 모범적인 공소로 교회의 잡지에 소개되었고, 1949년에 이르러서는 서천 지역에서 세 번째로 교세가 큰 공소로 성장하였다. 이로써 그는 향촌 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로 거듭나고, 그의 가계도 이전의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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