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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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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도시인문학연구 도시인문학연구 제6권 제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45 - 288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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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俄館播遷 이후 근대국가를 지향했던 대한제국기로부터 일제 식민지기에 이르는 현재 서울 도심부의 중심공간인 貞洞을 중심으로 도시공간의 변화과정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대한제국기는 10년 남짓한 짧은 역사적 기간이었지만 현재 서울의 도시공간에 강한 영향을 미친 시기이다. 특히 정동을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된 근대화 프로젝트는 급변하는 세계문화의 흐름 속에서 부국강병의 근대국가를 실현하려했던 중요한 역사적 장소성을 가진 곳이다. 이러한 정동의 장소성은 국초 貞陵에서 시작되어 임진왜란 이후 임란극복의 장소라는 이미지와 함께 근대에 들어 서양 열강들의 조계지로 구성되면서 형성되어 갔다. 乙未之變 이후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도시개선사업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에 皇宮인 慶運宮이 건설되고, 대한제국의 상징적 공간인 圜丘壇이 경운궁 동편으로 인접해서 구성되면서 도시공간의 중심공간이 변동되게 된다. 아울러 태평로와 소공로의 구성과 기존도로의 개선사업 등을 통한 도로망체계의 변화를 통해 정동은 서울의 중심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화의 추진 성과들은 일본제국에 강제 병합되면서 도시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의 주체가 바뀜에 따라 애초의 의미와는 다른 식민권력의 의도가 중첩된 공간으로 변화되어 갔다. 대한제국기 새롭게 개통된 태평로는 京城市區改修事業과 더불어 일본제국의 상징적인 시설물로 채워지게 되고, 소공로는 그 명칭에 있어서도 長谷川町으로 바뀌고 도로 주변에 광장과 근대의 시설물로 채워지게 된다. 대한제국의 상징물인 원구단도 조선호텔로 바뀌게 되고, 황궁이었던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궁명이 바뀌면서 궁역도 축소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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