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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8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55 - 18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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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1315~?)과 관련한 자료는 1705년 13대손 이세회가 지은 <고려구성부원군이공묘표음기>가 전부이다. 그는 판도판서인 이광시와 덕양부부인 행주기씨의 아들이자 대제학 全信의 사위로 아들 사영과 사위․사이를 두었다. 그의 이름은 李冲仁 또는 李沖仁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는 부음을 통해 관직에 나갔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관력으로는 1339년(충숙왕 복위 8)~1340년(충혜왕 복위 1)을 전후하여 중서성지인, 1350년대 후반부터 1362년 이후까지의 통직랑, 홍복도감판관 등이 확인된다. 최종 관직이 문하시중이었다는 ≪기년동사약≫의 기록을 염두에 둘 때, 훨씬 다양한 관직과 활동을 역임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인할 수 없다. 그가 판관을 역임한 홍복도감이 어떤 성격의 관부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홍복도감이 소속된 전의시가 왕실의 제사를 주관하고 왕의 묘호와 시호의 제정을 주관하는 관청으로 전의시판사는 불교와 유교의 제례가 어우러져 진행되는 예제에 밝아야만 임용될 수 있는 자리였고, 홍법도감판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국휼의 예제는 물론 성리학적인 의식에도 관통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원나라에 사신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성리학을 수용했던 부친 이광시의 가르침을 염두에 둘 수 있는 부분이다. 이중인은 부친과 장인이 교유했던 백이정·김제안·김륜․이제현 등 유학자 그룹들을 선배로, 김득배․한방신 등을 자신과 함께 관직 활동을 했던 동료로, 이색을 자신의 후배이자 아들의 선생으로, 아들과 동년이었던 정몽주․임박․문익점․김군정․이존오․유원․곽추 등 신흥사대부들과 다양하게 교류하였다. 특히 그는 이색보다 14년, 정몽주보다 23년 연배였다. 이색은 그의 장자이자 자신의 성균관 생도였던 이사영의 학문을 칭송하였고, 이숭인 역시 이사영과의 관계가 특별했다. 이사영․이사위 형제를 포함하여 이색․한수․이집․이숭인․정몽주․정추․박진록․이무방․이종학․김구용 등은 나이․관직에 관계없이 교류하며 시국에 대한 토론과 대책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이런 관계에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중인의 집을 드나들었고, 개인적으로는 벗의 부친이나[정몽주], 제자의 부친으로[이색], 공적으로는 조정의 선배이자 尊丈으로서 이중인을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신왕조의 개창을 준비하는 이성계․정도전․조준 등에 맞서 개혁을 통한 고려의 보지와 부흥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이중인이 “어려서부터 학업과 뛰어난 업적으로 일대종장이 되어 포은과 목은이 어려서부터 학문을 종유하였고, 조선에서 80의 나이를 넘긴 그에게 구성부원군에 추봉하자 받지 않고 “본래 전조의 사람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지켜야 할 뜻이거늘 어찌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며 정충대절을 지켰다는 ≪기년동사약≫의 서술은 후손의 평가라 하더라도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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