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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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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0권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81 - 22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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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지역에서 생활하는 영일정씨 사과공파는 15세 손 ‘渡’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종백조가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자 울진을 은둔하였고, 이어서 16세기 중반에 삼척 쇄운리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그의 4대 손에 이르러 일부 후손들이 부친의 수령을 역임하였던 강릉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들은 근거지를 중심으로 장자가 본가를 계승하고 차자들은 인근에 분가하여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소농경영을 이루면서 한편으로 독서생활로 관직에 출사하는 생활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생활양태는 이들이 ‘친영례’를 수용하면서 부계 친족중심의 가족질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특성을 갖는다. 세거지에 전승되는 생활유적으로 효․열각은 삼척 쇄운리에 집중되어 있다. 그 중 “2세3효각”의 입향 초기 이들의 생활 표상이었다. 17, 8세기에 개최되는 “임영족회”와 18세기 중반에 건립되는 입향 시조 재실은 이들의 부계친족 중심의 문중의식과 ‘팔고조’ 의식이 지역사회에 공존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이들이 사족반열에서 ‘치향지인’의 위상을 확보하였음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추이 이 지방 종중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다. 포은 정몽주에 대한 숭모활동은 지방사회 사림과 종중의 공동의 관심사였다. “충절과 효행”, “이학의 종조”로서 포은에 대한 숭모활동은 향교 ‘문묘’의 ‘석전제’와 시문집의 학습을 통해 구현되면서 종중과 향중에 확대 재생산되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종중의 추모활동은 영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개성의 ‘숭양서원’으로부터 영정이 구득되면서 영당이 건립되었고 ‘다례제’가 정례화 되었다. 이 시기 추모활동은 종중의 자율적 공론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다례제는 향중 유림이 동참하는 형태로 확대 발전되었으며, 아울러 활성화 방안으로서 영당의 이전 논의가 발의 되었다. 향중과 종중의 공론에 따라 새로운 영당이 건립되고 영정의 이안식이 거행되었다. 이로서 포은 영당은 그 운영체계가 확대 정비되면서 종중은 물론 유림의 결집을 위한 구심체로서 기능하였으며, 아울러 포은의 도덕과 충정을 도의사회 구현의 근본으로 삼으려는 시대적 특성이 강하게 투영되고 있다. 다만 영정의 이안식을 둘러싸고 종중의 공론이 분기되면서 기존의 영정이 다른 곳으로 이안되었고, 이에 따라 용인의 충렬서원으로부터 새로운 영정이 구득되어 봉안되었다. 이로서 이 지방에는 두 개의 영당이 건립되었으며, 비록 동일한 운영체계를 갖추었으나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양상은 영정의 정체성을 의식한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시대적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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