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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학연구회 불교학연구 불교학연구 제30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39 - 17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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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장경에 관한 논문과 저술, 조사 보고서 등은 3백편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운 시기와 경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그 원인은 이에 대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 있다.『 태조실록』의 단편적이고 불명확한 기사에 의존하다보니 대장경이 강화도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 어떠한 경로로 해인사에 도착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연구자들은 아예 실록의 기사를 인정하지 않고, 그 시기를 고려말 또는 세조대로 추정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어 왔다. 그런데 일찍이 한 용운과 김 영수는 고려대장경판 중에서 새로운 기록을 발견하고 이운 시기에 대한 卓見을 제시하였다. 均如가 주석한『 釋華嚴敎分記圓通鈔』에 음각된 1405년의 冲玄의 기록에 따라 판전의 조성 등 예비 작업은 이미 1397년에 시작되었고, 1398년 5월 10일에 강화도를 출발하여 1399년 1월 이전에 이운이 완료되었다고 하였다. 필자 역시 사료를 검토하고 연구자의 견해를 종합한 결과 이러한 결론에 동감한다. 이운 경로 역시 이운 시기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이운 경로에 대해서는 그동안 육지길과 바닷길이 제기되었지만 물길과 육지길을 모두 거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강화에서 배를 타고 한강에 도착하였다가 다시 한강을 떠나 충주에 이르고, 육지길을 통해 문경새재를 넘어 남하한다. 낙동강에 이르러 다시 배를 타고 고령의 개경포에 도착하여 육지길로 해인사에 도착하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대장경의 판각지와 보관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충현의 기록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충현은 즉 “丁丑年 出陸時 此闕失 與知識道元 同願開板入上”이라고 하였는데 이 가운데 ‘出陸’이라는 의미는 대장경이 섬에서 ‘육지로 나왔다’는 뜻이다. 대장경의 판각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고 남해와 강화도뿐만아니라 해인사, 下鋸寺, 斷俗寺, 東泉寺 등의 여러 지역이 판각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그동안 정설이었던 남해나 강화도를 부정하고 판각지를 해인사 자체 및 인근 지역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충현의 기록은 대장경이 해인사에 도착한 지 불과 7년 뒤의 기록으로서 사료로서의 가치와 신뢰성이 높다. 즉 대장경은 분명히 섬에서 육지로 나왔다는 기록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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