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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비교학회 세계문학비교연구 세계문학비교연구 제32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41 - 36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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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루씨 시편” 연구를 통해『서정담시집』「서문」에서 그가 주장한 “실험성”의 관점에서 모더니즘의 시적 어려움이 낭만주의 시에 이미 선행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모더니즘의 시적 어려움이 철학과 거대서사로서의 문명을 부각한다면, “루씨 시편”이 실린 󰡔서정담시집󰡕에 나타난 낭만주의적 시의 어려움은 당대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실험정신을 대변한다. 당대의 대표적인 논객들은 워즈워스가 관습적인 시가 아닌 당대 독자들의 감수성을 시험할 정도로 어려운 시를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워즈워스의 실험성은 평범한 시를 낯설게 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엘리엇이 워즈워스의 감성시학을 비판하고 현대문명이 요구하는 복잡하고 난해한 시학을 주창했을 때, 그의 입장은 빅토리아조에 형성된 고립된 “낭만주의 예술가”의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한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찬사를 받은 워즈워스는 투명한 언어로 주관적인 느낌을 서정시로 표현하는 시인으로 환원되었는데, 모더니즘 시학이 반대하는 워즈워스의 시는 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유산인 것이다. “루씨 시편”은 워즈워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후대의 비평가들의 해석에 의해 탄생되었다. “루씨 시편”이 제기하는 어려움은 개별 시의 해석뿐만 아니라, 여러 시를 묶어 하나의 그룹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에서도 기인한다. 하트만이나 퍼거슨 같은 비평가들은 다섯 편의 시를 하나의 그룹으로 보는 반면, 본고는 1800년 판 󰡔서정담시집󰡕에 실린 네 편의 시로 그 범위를 한정하되, 하나의 그룹으로 보더라도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러티브를 구성한다고 보는 관점과는 거리를 두고자 한다. “루씨 시편”은 개별 시안에서 의미를 구성하지만 각 시들의 상호관계를 통해 상대적으로 결정되기도 하므로 한 편의 시는 다른 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독자의 적극적인 해석을 환영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일정 정도 거리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듯 “루씨 시편”은 시인과 화자, 그리고 독자 사이의 의미구성과 관계맺음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는데 기여한다. “루씨 시편”에 나타난 워즈워스 특유의 절제된 언어가 전해 주는 어려움은 일차적으로는 재현의 어려움에 상응하는 시학을 구성한다. 아울러 연인의 상실을 애도하는 비문양식의 시를 통해 시의 화자가 대면한 어려움이 절대상실의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개인적인 감정소모를 넘어선 존재론적 고뇌에 무한히 접근하는 윤리적인 가치로 해석될 수 있다. 화자는 루씨를 묘사하거나 자신의 슬픔을 언어를 매개로 재현하는데 한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그 때문에 그는 사랑의 감정을 늘어놓기 보다는 역설적이게도 절제된 슬픔을 간결하고 파편화된 언어로 표현한다. 그는 루씨의 생전 모습에서 유한성을 의식하지 못하다가 상실 후에야 비로소 그녀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닌 한낱 인간이었음을 깨달음으로써, 연인에 대한 애도를 거쳐서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자의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화자는 연인의 죽음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거나, 감정에 몰입해 슬픔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죽음 후에 자연과 하나가 된 연인의 상태 변화를 담담한 심정으로 전해주는 듯하다. 절대적인 상실의 아픔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화자는 인간중심적 인식에 기반한 시학을 이미 비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화자가 겪는 상실의 아픔과 재현의 어려움은 결코 무뎌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을 인간 본연의 존재 조건에 대한 명상으로 이끈다. 워즈워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가 만들어 낸 어려움은 독자를 소외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층적인 해석의 장으로 초대한다. “루씨 시편” 연구를 통해 살펴 본 워즈워스의 낭만주의적 어려움은 현대시의 실험성을 이미 실현한 것이며 모더니즘 시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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