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세계문학비교학회 세계문학비교연구 세계문학비교연구 제49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9 - 92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국민가인으로 일컬어진 사이토 모키치(斎藤茂吉)의 단카가 전쟁으로 얼룩진 일본근대의 한 시대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그 위상과 역할을 객관적 시각으로 재검토 한 것이다. 전시기의 모키치는 진심으로 천황의 성전을 믿고 앞장서서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한 국가의 대변자였으나 천황의 종전조서 발표와 함께 ‘침묵’을 선언했다. 이 침묵의 성격은 의도된 포즈로서의 침묵으로, 패전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울분과 항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책임 추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일체의 윤리적 판단이나 반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태도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침묵을 통해 자연영으로 급선회한 전후의 그의 단카는 가장 순수한 비탄으로 거듭났으며, ‘나라는 망했어도 산천은 남았다’는 수사를 환기시키며 국민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후의 모키치 단카가 보여주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언어는 당시의 일본 국민들에게 분명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였겠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피해자 의식을 조장했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국가이념이나 역사적 과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봉인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단죄나 수정의 계기를 소거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감상적 비애와 재생에의 희구를 노래할 뿐, 어떠한 인식론적 전환도 없이 전쟁중에서 전후로 이어져간 그의 단카는 따라서 패전 후 70년이 흐른 현재의 시점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1)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