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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일본근대학연구 제36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21 - 240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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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칙령41호의 「석도」가 오늘날 「독도」라고 하는 것을 고증하기 위해 고지도와 고문헌상에 등장하는 울릉도와 독도의 토속적인 명칭에 관해 연구한 것이다. 우선 「우산도」라는 명칭은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동해에 우산도와 울릉도 두 개의 섬이 존재한다는 인식아래 울릉도의 동서남북에 우산도가 표기된 것, 안용복사건을 계기로 해서 우산도의 존재가 울릉도 동남방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명확한 것으로 인해 우산도를 울릉도 동측, 남측, 북측에 그린 것, 조선중기, 후기에 조선정부가 공도정책으로 울릉도도항을 금지한 이후 조선관리가 단기간에 울릉도에 체재하였을 때 무분별하게 지금의 「죽도」를 우산도로 잘못 표기한 것, 오늘날 독도의 위치와 일치하지 않지만, 우산도가 지금의 「죽도」가 아니라는 명확한 인식아래 죽도의 위치를 피하여 우산도를 표기한 것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조선조정이 울릉도개척을 본격화하였을 때 울릉도 거주민들에 의해 독도의 존재와 그 위치나 형상을 잘 알고 있었다. 고종황제가 영토관리의 차원에서 칙령을 발령하여 「돌섬」에 해당하는 관찬문서용의 한자표기로 「석도」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독도」라는 명칭은 「돌섬」의 의미를 가진 전라도 방어에서 명명된 것이다. 당시 울릉도에는 전라도 출신들이 80%나 이주하여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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