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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일본근대학연구 제45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53 - 272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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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는 조선에 󰡔고려대장경󰡕 구청(求請)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였다. 불교를 통일왕조의 사상적 구심점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통일 이전 삼산은 각각 종족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 왕조의 출범에 따라 보편적 이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통일 왕조라는 정당성 확보와 왕권강화를 위해 불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하였다.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불교 정착을 위해 󰡔고려대장경󰡕 인경본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16세기 명(明)이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실시하자 류큐에 의한 대교역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러나 명의 해금정책 완화로 중국 상인에 이어 일본 상인도 진출해 오자 류큐는 동남아시아 교역에서도 철퇴를 맞게 되었다. 조선과 류큐의 교류가 무려 1/4로 감소하였고, 교역로는 해로에서 육로가 바뀌었다. 󰡔고려대장경󰡕을 인경하면 16만장의 종이가 소요되어 6,807권으로 편성된다. 조선은 󰡔고려대장경󰡕 인경을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므로 매번 하사해 주는 것은 어려웠다. 그리고 대규모 대장경을 한꺼번에 이동하기 위해서는 육로로는 불가능하며 해상을 이용해야 한다. 여기에 류큐가 해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자, 󰡔고려대장경󰡕 구청이 감소하게 된 것으로 추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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