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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일본근대학연구 제46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307 - 33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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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전국적인 ‘기리시탄 금교령’이 내려지자 사제들은 잠복 사목 활동을 하다가 추방되거나 순교 당하게 된다. 특히 한 사람의 사제도 없는 상황에서 금교령이 해제될 때까지 신자들 스스로 비밀 조직을 만들어 세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의식(儀式)과 교리, 기도문 등을 세대를 거듭하여 전승해 온 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잠복 기리시탄’이라 하고 그 기간을 잠복시대(1644-1873)라 한다. 본고에서는 기리시탄시대(1549-1644)의 세례가 잠복시대에도 교리에 적합하게 이루어졌는가의 여부에 관하여 교리서 󰡔도치리나 기리시탄󰡕(1600)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첫째로 세례를 베푸는 자의 자격은 적합한가이다. 신앙 공동체 속에서 세례 담당자를 세워 세례를 전승하여 왔는데, 이는 “사제가 없는 곳이라면 기리시탄 누구라도 베풀 수 있다.”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둘째로 세례를 받는 자의 자격은 적합한가이다. 공동체가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자연적으로 유아세례가 거의 모두를 차지하며, 아이의 부모가 미즈카타로 불리는 세례 담당자에게 세례 청원을 한 후 대부모를 동반하여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세례 집례자의 세례 의식 행위, 즉 선포하는 세례문과 물을 뿌리는 방법이 적합한가이다. 선교사들의 선교에 대한 열심과 기리시탄의 헌신, 탄압에 대비한 일본 상황에 맞는 콘프라리아(confraria)의 조직이나 종교서의 발간 등이 탄압기에도 신앙을 이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사제의 지도 없이 조직 독자적으로 세례를 전승한 결과, 지역별・조직별로 큰 차이가 나며 기리시탄시대의 교리서에 적합한 세례도 있고 적합하지 않은 세례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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