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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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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2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01 - 227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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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소현세자빈 강씨의 리더십에 대해 재조명한 것이다. 소현세자빈 강씨(1611-1646)는 서인 명문가 금천 강씨 강석기의 둘째 딸로 태어나 1627년(인조 5) 17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되어 한 살 아래인 소현세자와 가례를 올렸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청군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이때 청 황제에게 절을 해야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강빈은 자신의 의복을 나인에게 내주고 대신하게 하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고 맺은 정축맹약에 따라 소현세자빈 강씨는 소현세자와 함께 청의 인질로 심양에 끌려갔다. 심양에서 만 8년동안 볼모생활을 하면서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그녀는 뛰어난 경영능력 리더십으로 무역과 대농장 경영을 통하여 큰 재물을 모았다. 소현세자 부부는 만8년 동안의 심양과 북경에서의 인질생활을 마치고 1645년(인조 23)에 귀국하였으나 인조를 위시하여 조선 조정에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것은 청이 인조 자신을 폐위하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세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결국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달 여만에 급서하고 강빈은 소현세자가 죽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듬해 역모로 몰려 폐출. 사사되었다. 1646년(인조 24) 3월 15일 강빈은 36세의 나이로 3남 3녀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숙종대에 와서 강빈옥사가 무고임이 밝혀지면서 강빈은 ‘愍懷嬪’ 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그녀의 친정식구들도 모두 신원되었다. 요컨대 소현세자빈 강씨는 왕실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심양에서 볼모생활하며 청과 국제무역을 하고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여 재물을 모으는 리더십이 있었다. 이 자금으로 노예로 있던 조선인 포로들을 속환시켜 농군으로 고용하였던 것이다. 남편 소현세자는 이 재물을 바탕으로 조선과 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청나라의 고관들과 교분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녀는 볼모라는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던 총명하고 강인한 여성 리더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경제활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경영능력 뿐만 아니라 당시 역관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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