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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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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57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85 - 21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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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沆은 1597년 7월 일본군에게 사로잡혀 1600년 5월까지 일본에서 생활했던 被虜人으로, 자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看羊錄을 저술했다. 이 글은 간양록을 토대로 그가 일본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강항은 쓰시마 섬(對馬島)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는 적개심으로 일관했다. 그 이유는 일본군의 조선 침략이 쓰시마의 책략을 히데요시까 따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전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성리학적 질서론에 따라 明 이외의 나라에 天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일본인에게도 人性이 있지만, 법령과 상벌에 의해 일본인들이 호전적이며 잔인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일본에서 불교가 성행하는 것 역시 軍役과 徭役 등의 민들이 과중한 부담을 지기 때문이라고 하여 잘못은 지배층에 있다고 생각했다. 강항은 華夷論에 입각하여 일본을 夷狄視 하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일본의 자연 환경과 면적, 건축, 기술을 우대하는 풍속, 해외무역의 발달 등 당시 일본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 정확한 기술을 하였다. 한편 그는 일본에서 기술자를 우대하며 대외무역이 활발하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일본이 조선보다 작다는 日本小國觀이 잘못된 것임을 알렸다. 일본인들에게 고유 문자가 있음도 소개하고, 일본의 축성기술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는 그가 일본에서 직접 생활하였던 만큼 일본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강항의 일본에 대한 시각은 조선시대 전통적 일본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일본의 실상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정확히 파악했다는 점에서 전쟁직후 대일인식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또 그의 글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에서 조선인의 일본에 대한 시각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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