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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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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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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57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33 - 6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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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시에 나타난 자아의식을 고찰하는 목표로 집필되었다. 한훤당은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즉, 세상을 광정(匡正)하는 것이었다. 한훤당의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의 포부가 원대하였다. 이처럼 자아, 즉 한훤당은 젊어서부터 장부(丈夫)의 기개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한훤당을 평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꼿꼿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정통 도학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펴서 강론할 때나 공무(公務)를 집행할 때는 엄정하였지만, 평소 생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평소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있어 인색하지 않았으며 다정다감(多情多感)하였다. 한훤당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근본으로 하여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실천하려 하였다. 그가 비록 관직에 매여 있었지만 그의 학문의 지향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었다. 그는 이 위기지학을 바탕으로 도덕적 이상주의를 실천하려 하였다. 이 도덕적 이상주의가 그의 제자인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국가관에 그 영향을 미쳤다. 한훤당은 어려서는 성질이 강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그다지 강직하지 않다. 그의 시에 나타난 풍격(風格)은 전형적인 유학자들의 시와 같이 충담⋅한아(冲淡⋅閒雅)하다. 이러한 인품과 시풍은 바로 지지당의 그것과 서로 비슷하다. 한훤당의 시에는 호방(豪放)하거나 웅혼(雄渾)한 풍격(風格)의 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훤당에 평가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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