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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학회 영국 연구 영국 연구 제3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5 - 9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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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 없이 사망한 후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James VI)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나타난 양국의 통합 계획과 그에 대한 양국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오랫동안 적대적이었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명의 국왕 제임스 6세 겸 1세(James VI & I)의 지배 아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왕관들의 통합(Union of Crowns)’으로 일컬어지는 이것은 왕과 왕조의 통합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두 왕국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법, 정치 기구 그리고 교회들의 통합은 아니었으며 단일한 하나의 왕국과 국민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제임스는 성직자가 두 개의 성직록을 소유하듯 두 개의 왕권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제임스는 ‘완전한 통합(perfect union)’을 희망했다. 그는 하나의 의회와 하나의 법, 하나의 교회는 물론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완전한 하나의 나라를 원했다. 그러나 통합문제는 아주 복잡했고 두 나라를 완전하게 통합 시키려는 그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자신들보다 열등한 상태로 규정하고 스코틀랜드가 더 위대한 잉글랜드로 흡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스코틀랜드는 그들의 기본적인 법과 제도들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랬다. 결국, 자신들의 기존 체제를 지키려는 양국의 저항은 제임스가 완전한 통합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통합을 추구하도록 촉구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등장한 다양한 논쟁들, 반응들 그리고 문제점들은 이후 1707년 등장한 또 다른 통합 논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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