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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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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0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7 - 3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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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목은 이색과 점필재 김종직의 「관어대부」를 중심으로 그 생성 배경과 형식, 의미, 영향 관계를 논술한 것으로, 목은은 평정심에서 이 「관어대부」를 지었다. 따라서 그가 사물을 보는 것도 순수하였다. 그의 부 전체를 흐르고 있는 정조(情調)도 긴박하거나 긴장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점필재는 그의 마음이 긴박할 때 이 부를 지었다. 목은과 점필재의 부는 비록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의 구식을 따오고 있지만, 이 두 부는 변려문(騈儷文)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고문(古文)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목은이 이 「관어대부」를 언제 지었는지는 상고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의 만년에 이 부(賦)를 지은 것 같다. 목은의 부는 평상심을 가지고 자연을 관조하고 있다. 인생의 연륜이 쌓인 뒤의 너그러움이 이 부에 녹아 있다. 반면 점필재의 것은 그렇지 못하다. 그가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아직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을 때 이 부를 지었다. 이 두 부의 공통점은 솔성(率性)을 도(道)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용󰡕을 엮은 자사(子思)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들의 정신은 바로 천인합일사상이다. 목은은 역물(役物)하면서 부를 지었지만, 점필재는 역어물(役於物) 상태에서 이 부를 지었다. 이점에서 점필재의 부는 목은의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점필재 부의 한계이다. 초기에는 점필재와 사가정, 즉 도학파와 사장파에 속하는 문인이 목은의 「관어대부」를 모범으로 하여 자신들의 부를 지었다. 뒤로 가면 주로 안동출신의 문인들이 이 부를 많이 모방하였는데, 그것은 첫째 영남 지방의 선비들은 목은을 종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둘째는 영해를 가 본 사람들 또는 영해에서 과장(科場)을 열 때도 목은의 「관어대부」를 표본으로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에서 소동파의 「적벽부」를 추숭한 것과 같다. 이것이 이 부의 문학사적 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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