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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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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3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67 - 30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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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李珥: 1536-1584)은 출천(出天)의 효자로 어려서부터 “포대기효자”로 유명하였거니와 그의 일생은 효로 점철된 인간상으로 효정신이 너무나 확고하였다. 한국의 유학자들은 누구나 효를 일상으로 언급하였지만 율곡은 “조선조의 효사상”을 정립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곧, 효학은 국교(國敎)요, 학문으로 성립하기에도 충분하다. 생각해 보면 율곡의 학문은 효학의 기초위에 조선조의 성리학을 송대이후로 퇴계와 함께 높은 산봉우리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율곡사상형성과정을 보면 우리 고유의 뿌리사상인 신교로부터의 원형과 묘맥의 싹을 성장시킨 유교를 집성한 이는 단연 동이인 공자로 우리 고조선의 제후국의 제왕인 요, 순을 조술하고 주나라의 문, 무왕을 헌장하여 집성한 바 이른바 육경이다. 그런데 그 중심이 인효(仁孝)이다. 이는 상고대의 환국의 ‘한인오훈’ 속의 효와 무관하지 않다. 삼국시대에 되돌아온 유교는 오경중심의 공자의 인효학이 정착되어 한국사상사에서의 효학은 그 위상이 아주 높다. 고려말에는 주자학이 전래되어 사서중심의 효교육과 주자학적 효사상은 “한국인의 정신”이 되었다. 그런데 율곡은 선조를 철학적 군주로 이끌기 위해 충군(忠君)의 방법으로 『성학집요』를 제진하였는데 「정가장(正家章)」에서 ‘효경(孝敬)’을 군왕정치의 효철학으로 올렸다. 그런데 공자의 효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효철학으로 제진하였는데 서양사상의 수용으로 인간의 바탕이 붕괴된 현대 국가의 철학부재의 정치와 뿌리없는 교육에도 지도자의 효철학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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