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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1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7 - 28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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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의 「서문(誓文)」에서는 “충(忠)”의 정신으로 일관했던 대군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실천하는 선비였음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이기륭, 이명희는 단종 충신들을 현창하기 위한 초석을 구축한 선비들이다. 이 두 선비들의 공로는 유가적 문화의식에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충절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한 그들의 선비정신이야말로 18세기 순흥 지역의 선비문화를 창달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대평서당기(大平書堂記)」는 1822년에 지은 것으로, 19세기 순흥 고을 사람들에 의해 계승된 유교 문화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축년에 희생된 지사들의 충절을 현창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금성단이 유교의 성지(聖地)로 자리하며 추앙을 받는 연유는 이처럼 고을 사람들이 진심을 모아 거행해 온 제사의식에 의해 순흥의 유교문화가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목숨을 바쳐 인(仁)과 의(義)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굳은 결심이 아니고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목숨을 바쳐 단종 복위 의거에 참여한 지사들의 마음이야말로 유자(儒者)들이 추구하는 선비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금성단 경내에 “성인비(成仁碑)”가 세워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선비정신을 근간으로 추진된 순흥 지역의 단종 복위 의거는 수개월간 그들이 불철주야(不撤晝夜)로 의기투합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무매(無寐)」시를 지으며 한을 형상화한 것은 적소(謫所)에 있는 단종의 한(恨)을 자신의 한(恨)과 동일시한 데서 오는 괴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시운(延諡韻)」은 금성대군에게 “정민(貞愍)”이란 시호가 내려져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홍구경의 시는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해서는 백 번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금성대군의 결의(決意)를 추념(追念)한 것이다. 홍응린의 시는 “홍모(鴻毛)”와 “산(山)”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정신을 추념하고 있다. 군자는 선(善)에 대한 식견이 분명하기 때문에 명분(名分)과 절의(節義)를 태산보다 더 무겁게 여기며 그 마음씀이 엄밀하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기러기 털보다 더 가볍게 여긴다. 「등순흥금성단유감(登順興錦城壇有感)」시에서는 “의백충혼(毅魄忠魂)”과 “천년벽혈(千年碧血)”을 통해 영령들의 충의(忠毅) 정신이 후대인들에 의해 영원히 현창(顯彰)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대평서당(大平書堂) 찬시(撰詩)」는 정축년의 참화를 입어 몰살당한 76가구의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온 사실을 전해 듣고 이를 미담(美談)으로 여겨 칭송한 것이다. 작가는 고을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영령들의 충의(忠毅) 정신이 현창(顯彰)되고 있어서 이곳 순흥이 어질고 정의로운 고장으로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충혼(忠魂)들의 원한(怨恨)과, 순흥 지역 사람들의 숙원(宿怨)을 신원(伸寃)한 사실에 대해 축경(祝慶)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향의식을 거행하며 충혼(忠魂)들을 현창(顯彰)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고을 사람들의 진심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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