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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1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69 - 20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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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의녀제도가 설치되면서 여성의료인으로서 활동하였던 의녀(醫女)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의녀제도의 설치는 남녀유별의 도(道)를 실천하고 그 당시 시대의 학문인 성리학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의녀제도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제도였다. 의녀는 의술에 뛰어난 자도 적었고, 또 그 수도 많지 않았으나 치료와 간병 그리고 산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부녀자에 대한 의료시혜라는 면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의녀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임무는 간호활동이었다. 또 임금을 비롯한 왕족이나 고관 또는 그 가족 중 여인의 질병을 주로 진맥(診脈)을 통해 진찰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들은 왕족 부인들의 병을 진찰하고 그 상태를 어의(御醫)에게 전달하여 처방하도록 의관을 보좌하였다. 의녀는 이렇게 의원을 보좌하는 것이 주 임무였지만, 때로는 증후를 의관과 같이 파악하는 등 의원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는 의녀도 있었다. 의녀는 이러한 의료인으로서의 기능 이외에 범죄자의 성별감식, 양가부녀에 대한 심문, 구타를 당한 부인의 상처 조사, 그리고 납채·납폐·성혼일에 혼가에 가서 부정의 유무를 조사하는 등, 치료 이외의 임무도 가지고 있어서 다각도로 사회에 기여하였다. 의녀는 천민(賤民)이었지만,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양인(良人)에 준하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내의원(內醫院)의 의녀나 의술에 뛰어난 여의(女醫)들은 상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의녀제도의 창설과 이들의 활동은 폐쇄되어 있던 조선사회에 여성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단초를 제공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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