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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9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09 - 13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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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소금동불이다. 소금동불은 주로 불상만 독존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들 불상에는 뒤에 광배꽂이가 남아 있어 원래는 광배가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예가 상당수 있다. 현전하는 명문이 있는 소금동불상은 9건에 불과하지만 삼국시대 사람들이 주로 광배에 명문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광배를 잃어버린 소금동불 가운데에는 명문을 가진 불상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명문의 내용은 부모나 처 등 근친자의 추복을 기원하는 소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현재 부모를 위해서 혹은 자신이 부처를 만나 불법을 듣기를 바라는 등 모두 개인적 소원 성취가 조상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삼국시대 사람들은 소금동불상을 만들면 그 공덕으로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상당히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소금동불은 주로 탑이나 사찰에서 발견된다. 불상이 탑 속에 사리장엄으로써 다른 장엄구와 함께 안치되었거나, 또는 사찰 어딘가에 있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유점사 본전인 능인보전의 주존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어 온 53개의 소금동불상들, 사찰 혹은 금당의 구현인 석굴에 천불이 모셔진 예 등을 볼 때 현세 천불 가운데 하나인 연가7년명 등의 금동불상들이 사찰의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명문 소금동불상은 근친자의 추복을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들 추복을 바라는 소금동불상들도 53불이나 천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찰의 전각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모셔져 예경되었을 것이다. 이들 불상 중 석가상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실은 당시 불교신앙에서 석가가 중심적 지위였던 점을, 그리고 명문에서 보이는 불교 이해의 불완전성은 소금동불 조성자들을 비롯한 삼국시대 사람들의 불교이해 수준이 아직 충분하지 못한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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