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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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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9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37 - 16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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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령전(景靈殿)은 고려 왕실의 태묘(太廟)와 함께 조상숭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고, 제사의 한 형태였다. 송(宋) 경령궁(景靈宮)의 영향을 받은 경령전은 선왕(先王)의 진영(眞影, 초상)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공간으로 현종 때 설립되었다. 경령전은 왕궁 내에 진영을 모신 진전(眞殿)의 한 형태로 불교식 예제이기도 했지만, 5묘제(五廟制)로 운영된 까닭에 유교식 예제가 가미된 매우 독특한 방식의 조상숭배였다. 따라서 경령전은 고려 왕실의 조상숭배 형태와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한대(漢代)에 기원을 둔 원묘(原廟)이기도 한 경령전은 현종이 친부모인 안종(安宗)과 효숙태후(孝肅太后)를 봉안하고자 재위 18년(1027) 쯤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경령전은 태묘와는 다르게 왕위계승이 아닌 혈연에 의한 직계 부모를 봉안한 점이 특징인데, 이것이 제16대 예종 때 태조를 비롯해 현 국왕의 직계 4대조(四代祖)를 5실에 모시는 형태로 정착되었다. 경령전의 운영과 기능은 고려의 역사와 더불어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고려중기 왕권 안정기의 경령전은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조를 봉안하며 왕실과 국가의 사당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무인정권기 왕권의 추락과 함께 경령전의 운영이 순조롭지 못했고, 그 기능도 이전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었다. 또한 원(元) 간섭기와 고려 말에는 경령전의 기본 형태는 유지되었지만, 그 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최소한의 의식이 거행되는 정도였다. 경령전은 부침을 거듭하였지만 고려 멸망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고, 또 조선 초에는 문소전(文昭殿), 광효전(廣孝殿) 등에 영항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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