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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74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207 - 23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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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武壯公祠는 청 吳長慶을 주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親慶軍 6營을 이끌고 한반도에 들어온 오장경은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군란을 진압했으며, 그 후 한반도에 머문 2년 동안 친청 인사들을 내세워 내정 간섭에 나섰다. 1884년(고종 21)에 본국으로 돌아간 오장경이 병사했다. 오장경의 喪變 소식이 한반도에 전해오자, 정권 안정에 도움을 받은 고종은 오장경을 기리는 사당을 옛 下都監 자리(을지로 7가 서울 메트로빌딩 동대문별관)에 세웠다. 창건 당시의 사당 명칭은 靖武祠이다. 이후 매년 고종은 관원을 정무사에 보내 치제를 하였다. 1893년(고종 30)에 오장경의 부하 吳兆有를 정무사에 배향했다. 1908년(융희 2)에 조선 내각의 향사 개정으로 인하여 사당 제사가 폐지되었다. 1909년(융희 3)에 정무사의 관할권은 청나라 영사관으로 이양되었다. 이때 청국 총영사관 馬廷亮은 사당을 보수하고 명칭을 吳武壯公祠로 바꾸었다. 1942년 國民政府 公使待遇 林耕宇가 사당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1979년에 서울시 도심지 정비 계획에 따라 사당을 현 위치인 漢城華僑中學校(마포구 연희동 89-1번지)의 뒷산으로 이전 완료했다. 1982년과 1992년에 각각 화교 관계자들이 사당을 보수했다. 한국 화교들은 오장경을 開山鼻祖로 받아들이고 있고, 오무장공사를 화교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 장소로 여기고 있다. 현 오장경공사의 사당 관리는 화교협회에서 맡고 있다. 사당에는 정전, 동재, 비각으로 구성되어있다. 정전에는 주향자 오장경 외에 배향자 吳兆有, 선조 화교의 위판이 모셔져있고, 동재에는 갑신정변 때 전사한 청군 장사들의 위판을 모셔져있다. 비각에는 조선 金尙鉉의 「吳武莊公之去思碑」를 비롯한 비석이 세워져있다. 사당 곳곳에는 사당 창건과 역사, 임오군란・갑신정변과 관련된 각종 유물이 남아있다. 오무장공사는 오늘날 화교들이 관장하고 한국 사회에서 거의 잊혀진 존재이지만, 사당이 조선 고종에 의해 창건된 유래에서 보듯이 이 또한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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