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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54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83 - 97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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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村 劉克荘은, 南宋 淳熙14(1187)년에 태어나서 咸淳5(1269)년에 사망했다. 남송 후반기의 관료로서 「江湖派最大詩人」이기도 했으며, 법제사 연구 분야에서는 그의 판결이 잘 알려져 있다. 『名公書判清明集』(『清明集』으로 약칭)과 『後村先生大全集』(四部叢刊本, 『大全集』으로 약칭)에 남아 있는 판어는 유명하다. 그의 경력을 보면 중앙관료와 지방관 및 낙향 시기를 여러 번 거치면서 이른바 실각과 부활을 반복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강한 자아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들과 대립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清明集』의 편자는 그러한 원칙을 갖고 있던 그의 성격이 판어에 반영되어 있었기에 22편이나 수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清明集』이나 당시의 판어를 연구하는데 아주 좋은 소재가 된다. 또한 그것들 가운데는 이른바 「女子分法」을 인용한 경우가 있고, 기왕의 女子財産権을 둘러싼 논쟁으로 주목을 끌었음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그 판결은 법제사나 사회사 연구를 위한 사료로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全体像에 관해서는 아직 解明되지 않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南宋 判語의 판단기준을 분석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그리고 「女子分法」을 고찰하는 경우의 참고자료로서 그 判語의 성격을 고찰하려고 한다. 다만 지면의 한계가 있어서 여기서는 判語의 全体像을 확인하기 위한 기초 작업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아쉬움도 있다. 劉後村의 判語의 全体像을 살펴 본 결과, 현존하는 판어가 기록된 것은 知建陽県 시기와 江東提刑 시기이며, 『清明集』에는 그의 저작에 없는 判語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서 형식의 「帖」과 「牒」의 구별이 명확한 것이었다. 이후 이러한 인식을 근거로 판어의 내용에 관해 검토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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