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25 - 252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예수회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펼친 적응주의 선교정책은 대화의 차원에서 진행된 근대적인 선교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남미에서의 선교와는 정반대로 이민족을 향한 인간적이고 지적인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선교방식이 가능해진 것은 휴머니즘과 르네상스의 영향에 힘입어 오랜 기간에 걸쳐 다져진 철학적‧신학적 인간학적인 고찰이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토착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다. 발리냐노는 사비에르의 뒤를 계승하여 예수회의 동아시아 선교노선을 적응주의로 정하고, 규칙적인 발전을 보장할 만한 수도회의 선교조직을 모색하였다. 그가 동아시아 예수회의 시찰원으로 있던 1574년부터 마카오에서 세상을 떠나는 1606년까지 적응주의 노선에 입각한 아시아 선교를 위한 초석이 닦아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582년 루지애리와 마테오 리치에게 내린 지시문에도 문화전교의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것, 현지의 사회‧문화 풍속을 존중하겠다는 것, 토착문화를 사용하여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로 볼 때 발리냐노의 문화적 적응 정책은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가히 선구적인 것이었고 혁명적이라고까지 할만한 것이었다. 특별히 발리냐노는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하여 고정된 수입이 없었던 중국선교단에 확실히 보장된 지원금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즉 마카오와 일본간 상업무역에서 새로운 상업협의세칙을 제정해서 이로써 동방예수회 선교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즉 당시의 마카오 무역상들은 3명의 대리인을 선출해 중국에서 생사를 구매하는 업무를 관리 감독케 하였다. 피선된 3명의 대리인 가운데 한 명은 항상 예수회선교사였다. 그래서 발리냐노는 동방교무시찰원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이용 매년 1600담(擔) 중국생사의 총 물량 중 50담을 따로 선교사들에게 떼어주도록 허락받았고, 마카오 자문회의가 동의한 부칙에 예수회가 투자한 화물은 경영활동 중 어떠한 우발적 사태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영향을 받지않는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을 덧붙여 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중국선교단에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로 볼 때 발리냐노의 적응성 선교전략은 사비에르의 선교전략을 계승한 일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교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방대한 일본교회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나아가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전개하는데도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예수회의 선교 상황을 살펴볼 때 사비에르가 적응성 선교전략의 씨를 뿌렸다면, 발리냐노는 그것을 연구하여 체계를 세워 가꾸었고, 마테오 리치는 현실에 적용하여 실질적인 결실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1)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