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에 목사는 1900년 마지막으로 臺灣 동부 란양평원(蘭陽平原)을 순회하고 돌아와 후두암에 걸린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일년 동안 투병하다가 1901년 6월 2일 소천하였다. 향년 58세로 그의 좌우명대로 타이완 북부에서 29년 동안 불타는 선교 활동을 하면서 60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현대식 병원과 학교를 세우며 복음사역은 물론 臺灣 북부 사회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워 전방위적인 선교 업적을 이룩하면서 지금도 그의 뜨거운 선교 열정이 臺灣 교회와 신도들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불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에 목사가 臺灣 북부 지역에서 채택한 선교 전략은 순회 선교, 본토인 선교, 의료 선교와 교육 선교 등 대체적으로 특별한 것이 없이 그 당시에 보편적으로 실행하는 선교 전략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가 비록 일반적인 선교 전략을 취하며 타이완 북부 선교를 전개했지만, 그가 이룩한 선교 업적은 실로 경탄할 만한 아름다운 선교 열매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본인은 그가 이러한 아름다운 선교 열매는 선교전략도 중요하겠지만, 마지에 목사의 선교에 대한 사명과 열정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보고 싶다. 그는 순회 선교를 위해 8년동안 175일만 집에 머물고, 거의 선교지에서 순회 선교를 전개하였을 뿐 아니라, 2만여 개의 이를 뽑아주었다고 하니 그의 선교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가히 짐작하고 남는다.
마지에 목사가 채택한 臺灣 북부 지역에서의 선교 전략은 대부분 보편적인 선교 전략이었지만, 그중에 현지인을 통한 자립교회 형식은 그 당시의 선교 형태와는 조금 다른 진보적인 선교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시 중국 교회는 거의 모두 서방 선교사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특히 선교 사역의 경비가 거의 모두 서구 선교 단체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에 목사는 현지인들을 적극 배양하고 그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각 교회의 목회자로 배양하고, 또 교회의 운영과 경비를 모두 자립 형태로 운영하고자 노력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방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개념이 초보적 단계에서 보편화되지 않고, 많은 교회들이 자립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의 이러한 자립교회의 시도는 미래지향적이고 매우 안목 있는 선교 정책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의 선교 업적은 캐나다 뿐 아니라 영국에까지 알려져 1880년, 영국 황후학원(皇后學院)에서 그에게 명예신학박사(Honorary Doctor of Divinity)를 수여하며 그의 놀라운 선교 업적을 기념하였다. 그리고 서방의 많은 역사가들은 “차라리 불에 타 없어질망정 썩어지지 않겠다. (寧願燒盡, 不願朽壞, Rather burn out than rust out:)”라는 그의 좌우명처럼 그가 臺灣 선교에 바친 불타는 선교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
마지에 목사는 臺灣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110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했지만, 오늘날도 많은 아름다운 선교 열매를 맺어 가며 타이완 사회와 국가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어두운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을 주고 있다. 그의 불타는 선교 정신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선교의 귀감이 되어 깊은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