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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83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37 - 6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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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동남아 이주는 정화의 원정 이후 더욱 가속되었다. 16세기 이후, 동남아로 이주한 중국 남성들은 현지인 여성과 결혼하여 공동체(community)를 이뤘다. 이들은 페라나칸(peranakan)으로 불리며,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들의 경제력은 동남아 일부지역의 경제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이미 1866년에 중국계 상인들은 싱가포르 선박의 2/3를 소유했고, 대규모 신이주가 진행된 20세기까지 그들의 경제력은 확장되었다. 중국계 페라나칸과 새로 이주해온 중국인들 사이에 분열과 마찰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지 현지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한 점은 마찬가지이다. 중국계 페라나칸들은 중국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혼례, 장례를 치뤘으므로 그들의 의례용품과 일상생활용품에 중국의 전통이 반영된 것은 당연하다. 중국계 페라나칸들의 미술에는 봉황, 용 등의 상서로운 상징이 표현되었다. 불교와 도교의 영향도 적지 않아서 가정에 관음보살상을 모셔두거나, 장수와 복을 비는 신선을 수놓은 장식들도 만들었다. 경제력을 갖춘 페라나칸들은 중국 푸젠에서 도자기를 사오거나 주문하기도 했는데 이들 도자기는 중국에서 만들었지만 핑크색과 연두색으로 문양을 그려 페라나칸 중국인의 취향을 보여준다. 19세기 이후 새로 이주한 중국인들은 신커(Shinke)라고 불렸다. 이들은 페라나칸 여성과 결혼하기도 했지만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렸다는 점에서 앞 시대에 이주한 중국인들과 차이가 있다. 따라서 중국적인 성격이 더욱 강한 문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중국을 통해 본격적인 회화를 그리는 방법을 배운 것도 이때이다. 처음에는 동남아 현지의 낭만적인 열대를 그리다가 점차 자신들이 처한 현실로 눈을 돌려 격변하는 세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림과 판화로 만들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영국왕의 중국인’이라고까지 불렸던 페라나칸과 입장이 전혀 달랐다. 중국계 페라나칸과 신커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도 했지만 각자 처한 입장이 전혀 달랐다. 이들 동남아를 표현한 미술과 동남아 거주 화인의 문화는 복잡하게 형성된 화인들의 다문화(multi-culture)를 잘 보여준다. 본 연구는 시론에 불과하지만 동남아 거주 화인의 문화를 집중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계기와 문제의식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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