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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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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83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63 - 106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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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북송시기 보편적 원리를 각각 매우 다른 방식으로 추구하였던 3인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의 경우를 살펴봄으로써 어떻게 보편 원리의 추구의 문제가 사대부의 위상, 역할,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되게 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 대표적인 3인의 사상가는 邵雍(1011-1077), 王安石(1021-1086), 그리고 程頤(1033-1107)이다. 이들은 각각 象數學적인 절대적인 數의 질서, 經術과 字學을 통해 “一道德 同風俗”을 이룰 수 있는 道, 그리고 절대적인 天理라는 자연과 인간사회를 모두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보편 원리를 추구하였다. 이들의 보편 원리의 내용과 그 추구 자체가 가지는 당시 역사적 맥락에서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북송시기 지성사를 성리학의 前兆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그 역사적 맥락에서 자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후 성리학이 사상의 주류로 떠오르며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소옹, 왕안석, 정이 이들은 공통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상호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주희에 의한 성리학 체계가 동아시아 지성계의 주류가 되고 난 후, 소옹과 왕안석의 사상은 상당히 주변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왕안석의 사상은 매우 급속히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남송 이후 성리학이 주도하게 된 이후에도, 소옹과 왕안석의 사상은 지속적으로 여러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아시아 지성사의 다양한 변주에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들의 사상이 왜 특정한 시기에 다시 언급되면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지, 성리학 체계와는 어떠한 관련을 맺으며 다시 출현하게 되는지는 북송시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들이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문제와 그 방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정확히 이해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사상을 북송시기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그 공통성에 주목하며 상호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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