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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몽골학회 몽골학 몽골학 제4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49 - 9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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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및 동북아시아 고대사에서 낙랑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차이나 역사에서 출현하는 지방행정구역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낙랑의 위치에 대하여 전래되어오는 차이나 문헌에는 현재 차이나 요서지역이고, 근대에 들어서 연구된 위치는 한반도 평양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런 낙랑은 차이나의 역사에서 볼 때 낙랑은 이른바 ‘동이’를 상대하는 최전방의 의미를 갖는다. 반대로 고구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대 차이나의 입구와 같은 지역이므로 어떻게든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국력을 다하여 낙랑을 공격하였고, 차이나는 역시 힘을 다하여 막아내기도 하고, 공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313년 한국 역사서에서 낙랑이라는 지명이 사라지는데 이것을 한국학계에는 한반도에 있었던 낙랑이 고구려에 의하여 멸망 또는 축출된 것이라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차이나 문헌에 보면 낙랑은 700여 년 동안 계속 존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기록들을 한국학계에서는 이른바 ‘교치(僑置)’라고 설명을 하였는데, 그것은 원래 한반도 평양에 있었던 낙랑군이 미천왕에게 공격을 받아 한반도에서 쫓겨나 현재 차이나 남만주 금주지역으로 가서 다시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와 가까운 기록들을 보면 차이나 역사 중 왕조가 바뀌더라도 낙랑군은 계속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왕조는 시대가 혼란함에 따라 역사책을 남기지 못하여 그 실체를 알 수 없었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역사가 선비족이 세운 연나라의 역사이다. 이 선비계통의 연은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인데 그 중심지역이 바로 진(晉)나라의 유주(幽州)지역이었다. 이 지역에 낙랑군이 있었는데, 바로 이 지역에서 선비(鮮卑)의 연(燕)이 건국된 것이다. 그들은 기원후 300년경부터 450년대까지 이르는 기간동안 존속하였는데 이 기간에 낙랑군은 바로 이 나라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연의 역사책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이런 역사 기록들을 분석해볼 때 낙랑군은 한반도에서 축출된 적이 없었고, 더구나 교치된 적이 없었다. 즉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가 축출되었다거나 혹은 교치되었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차이나 사서에 보면 낙랑군은 서한 무제가 설치한 지역, 즉 현재 차이나 하북성 동북부에서 요녕성 서부지역에서 약간씩 변동을 겪으며 약 700년 내외를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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