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36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67 - 196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박래겸(朴來謙, 1780∼1842)은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공익(公益), 호는 만오(晩悟)․탑서(塔西)이다. 저서로는 <탑서유고초(塔西遺稿抄)>, <만오유고(晩悟遺稿)>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공무 체험을 담은 3종의 일기를 남겼다. 평안남도 암행어사의 체험을 담은 『서수일기(西繡日記)』, 함경도 북평사(北評使) 때의 공무를 기록한 『북막일기(北幕日記)』, 그리고 심양문안사(審陽問安使)의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심양(瀋陽)을 견문한 내용을 담은 <심사일기(瀋槎日記)>가 그것이다. 『심사일기』는 1829년 4월 20일 심양문안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때부터 동년 10월 24일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98일간 심양문안사로 갔던 견문들이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선, 상행(上行), 체류(滯留), 하행(下行)의 모든 기록이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이동 경로, 소요 시간, 일정 등을 매우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심양의 이국적인 풍경이나 풍속은 그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를테면 태평거(太平車), 창녀, 바둑, 전족(纏足), 상례(喪禮), 원숭이 재주 등은 외지(外地)에게는 낯선 풍속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청나라의 유서 깊은 장소들을 꼼꼼히 탐방하고 기록을 남겼다. 오랜 연행을 통해서 현지 중국인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있기도 했다. 앞서 다녀온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현지인을 추천하기도 하고, 현지인들이 자신의 지인을 소개하기도 했다. 체류 기간 내내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시와 선물을 주고받았다. 대부분은 예부(禮部)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자유롭게 서로의 거처나 숙소를 내왕했다. 그중에 무공은(繆公恩)은 박래겸과의 교유뿐 아니라, 한중 교류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한 달 동안의 심양 체류 기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역시 황제를 친견하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예부를 통해 황제의 동정(動靜)이 보고되고 이에 따라 연행사의 동선(動線)이 결정되었다. 다만 수많은 인원과 물자가 소요되는 행사치고는 황제와의 접견이나 대면은 싱겁게 끝이 났다. 황제가 직접 참석하여 제를 올리는 오운제(烏雲祭)와 환원제(還願祭)와 같은 것은 다른 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다. 또, 황제가 주최하는 여러 연회의 모습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다만 <계산기정(薊山紀程)>, <담헌서(湛軒書)>,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연원직지(燕轅直指)> 등의 기록들을 지나치게 의존해서 특정 장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록의 가치를 평가 절하 할 수는 없다. 이 논문을 통해 연경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심양의 연행 체험이 구체화되고, 박래겸의 일기에 대한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2)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