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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36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7 - 4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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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기실학파 혹은 근기남인계열의 대표 학자로 인정되는 성호의 학문이 형성된 과정과 근기남인계열 학맥 속에서 성호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서술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근기와 실학 그리고 근기실학의 개념에 대한 논쟁거리를 추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근기실학의 대표로 인정되는 성호의 학문이 형성된 과정과 그 과정에서 확인되는 문제점을 서술한 뒤 근기남인 학맥의 전개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정리해나가는 순으로 서술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근기남인계열의 학맥이 퇴계 이황 - 한강 정구 - 미수 허목 - 성호 이익으로 확정된 것은 번암 채제공에 의해서라고 생각된다. 번암은 근기남인계열의 존립을 위해서는 선명한 정치적 경향과 계보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미수를 높이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자기 계열의 학문적 정통성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 퇴계에서 성호로 이어지는 근기남인계열의 학맥을 설정한 것이라고 보인다. 여기에는 당대 번암 스스로가 처해 있었던 정치적⋅학문적 처지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퇴계에서 성호로 이어지는 근기남인계열의 학맥에는 학문적 영향 관계보다 오히려 당대 근기남인계열이 처해 있었던 정치적 상황과 그 정치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학문 외적인 의도가 더 강하게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근기남인계열 학맥의 흐름에 작용한 정치적 영향은 성호 이후의 학맥 전승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호의 학맥은 邵南 尹東奎⋅順庵 安鼎福⋅河濱 愼後聃을 거쳐 下廬 黃德吉, 性齋 許傳에게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와 같은 성호 학통의 계승은 성호 학통의 다른 두 부류를 배제한 것이다. 배제된 하나의 계통은 鹿庵 權哲身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貞山 李秉休를 이어 가계 내 후손들에게 전해진 계통이다. 성호의 학맥이 이와 같이 세 부류로 나누어지지만, 그 가운데 후대 적통으로 인정되는 계열은 순암 안정복 계열이다. 세 계열 중 순암 계열이 적통으로 인정된 것 역시 이전까지 살펴본 것과 같은 당대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보인다. 그것은 녹암 권철신 계열과 정산 이병휴 계열이 모두 후대 西學을 수용하여 상당한 정치적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녹암 권철신 계열과 정산 이병휴 계열에 학맥의 정통성을 부여할 경우 성호의 학맥 전체, 혹은 근기남인계열 학맥 전체가 정치적 탄압에 내몰릴 가능성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현재 알려져 있는 근기남인계열의 학맥은 실질적인 학문의 계승 관계보다 숙종대 이후 청남계열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시도된 다분히 정치적인 계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치적인 계보가 영⋅정조대를 거치며 형성된 蕩平政局과 연계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학문적⋅사상적 정통성을 확정하여 정치적 위상을 견고히 하고자 했던 당대 근기남인계열 인사들의 의식과 결부되어 확정된 것이라 유추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맥의 정립이 당대 사회에서 지니고 있었던 가치와 의미로 보아 이러한 학맥의 형성에는 정치적 의도뿐만 아니라 당대 근기남인계열 인사들의 기원과 의지라는 公議가 함께 담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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