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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4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9 - 3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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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은 1623년 3월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의 책봉을 주청하기 위한 책봉주청사 서장관으로 정사 이경전(李慶全), 부사 윤훤(尹暄)과 함께 해로를 통하여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민성은 이 때의 사행 경험을 󰡔계해조천록(癸亥朝天錄)󰡕과 「연사창수집(燕槎唱酬集)」으로 남겼다. 「연사창수집」은 사행 당시 정사⋅부사와 함께 수창했던 시문을 모은 시문집으로 󰡔경정집󰡕 권 6⋅7⋅8에 수록되었으며, 사행과 관련한 노정과 사건 등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계해조천록󰡕은 󰡔경정집󰡕 속집 권 1⋅2⋅3에 수록되어 있다. 이민성은 사행을 마치고 1624년 4월에 돌아온 후 고향으로 돌아가 1624년 5월에 「연사창수집」의 시문을 여정의 순서대로 편집하였으며, 󰡔계해조천록󰡕도 함께 완성하였다. 당시 해로사행에서 삼사가 함께 갈 경우 6척의 배가 출항하였는데, 이민성은 당시 사행시 출항했던 6척의 배와 각 배에 승선한 명단과 인원수, 직업, 그리고 배의 크기 등에 대하여 세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당시 해로사행의 규모와 참가 인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통해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가 자신의 책봉에 대해 매우 고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의주 상인들이 등주에서 장사하기 위해 격군(格軍)이 되려한 사실과 이를 통제하기 위해 요패(腰牌)를 나누어 주었던 사실을 적어 놓음으로써, 후금 세력으로 인하여 명나라와의 육로 교역이 어려워진 의주 상인들이 등주와 무역하기 위해 노력했던 당대의 삶의 모습도 읽어낼 수 있다. 이민성이 사행 당시 이용한 해로는 평안도 선사포에서 중국 등주에 이르는 뱃길이었다. 등주에 상륙한 후에는 육로로 등주에서 출발 추로(鄒魯) 지역을 지나 북경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의 추로지역은 조선조 선비들이 독서를 통하여 추체험을 가지고 있던 곳으로 조선 선비들이 몹시 가보고 싶어 했던 장소이다. 이러한 지역을 지나면서 서술한 󰡔계해조천록󰡕은 앞선 대명 사행문학이 매일 하루 동안의 노정을 적고 그날 있었던 사건을 기록했던 일기체 양식을 계승하였으며, 6월 13일 등주에 도착한 후부터 육로로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의 약 40일간의 노정에 대하여 추로 지역에 대한 고적과 풍속 등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하나하나 고증하였다. 따라서 󰡔계해조천록󰡕은 앞선 대명 사행문학 작품들과 달리 인문지리지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인문지리적 성격이 강한 이민성이 󰡔계해조천록󰡕은 이후 해로 대명 사행문학 작품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해로사행을 기록한 사행록 중에 서술 방식 자체가 일기형식이 아닌 각 노정별로 묶어 지리지로 서술하고 지도를 삽입한 작품도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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