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王陽明의 致知格物의 本義와 이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내용을 검토하여 양명학의 실천공부에 있어서 핵심을 이루는 치지와 격물의 의미가 양명후학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전개되었는지를 왕양명과 王門의 주요 학파인 浙中과 泰州, 江右學派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왕양명은 일찍이 치지격물을 正心誠意와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致知格物을 致良知의 外向的인 工夫로서 간주하였으며, 致知란 良知心體를 회복하고 확충하는 공부이고, 格物은 客觀事物들 모두가 우리의 양지심체가 發한 도덕법칙에 合致되어 각자 올바름을 얻게 되는 것으로 看做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陽明의 本義는 王學의 분화이후로 각 후학들에게 계승되었으나, 그들이 이해한 왕양명의 義理에는 그들의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양지심체에 대한 이해는 공부인 치지격물의 의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양명후학들의 이해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王門의 후학들은 양지심체 本然의 모습을 근거로 意念이 있는 事事物物에 나아가 그들을 바로잡아 모두가 善行과 善事를 표현하도록 함을 치지격물로 이해하기도 하고, 見在良知의 自然스러운 흐름을 강조하되 먼저 자신(身)을 바르게 하고 物을 바르게 하려는 成己成物의 형태를 주장하기도 하며, 또한 至善한 良知寂體(眞體)를 구하거나 그것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치지격물의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양명후학들의 치지격물 涵義는 왕양명의 본의에 충실하려는 각 학파 학자의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서로 완전히 일치된 형태의 이해와 체득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이는 良知心體에 대한 각자의 이해 차이가 결국 치지격물의 공부에도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러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