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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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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37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89 - 21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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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후기 정조대에 무인으로 활동한 백동수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연구의 목적은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반영된 백동수의 무예관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백동수는 1743년(영조 19)년부터 1816년(순조 16)까지 살았던 무인이다. 수원백씨로 증조부는 백시구, 조부는 백상화, 부친은 백사굉이다. 2남 1녀 중 장남이다. 둘째, 백동수의 관직은 1788년(정조 12)에 장용영 초관으로 시작하여, 1790년(정조 14) 6월 훈련원주부로 발탁, 1791년(정조 15) 4월 훈련원판관으로 임명, 1792년(정조 16) 윤4월 충청도 비인현감에 임명되었다. 1802년(순조 2) 평안도 박천군수에 임명되어 1806년(순조 6) 5월까지 역임하였다. 이후 1816년(순조 16) 그의 나이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셋째, 백동수의 학문적 교유관계는‘백탑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성대중 등과 학문을 논하였다. 넷째, 백동수의 『무예도보통지』 편찬 역할은 무예를 발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여 무예실기의 오류를 바로 잡고, 하나의 통일된 기법으로 정리하는 것과 24가지 무예를 각 군영에 보급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다섯째, 백동수의 무예관은 무예의 표준화이다. 『무예도보통지』는 명물도수의 기준으로 실용적인 관점에서 편찬되었다. 이를 통해 모든 군영에 하나로 통일되고 획일화된 표준무예를 보급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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