技 혹은 技藝는 예술창작 행위 및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 생산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든 중국예술장르에서 기 혹은 기예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기 혹은 기예 그 자체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항상 道와 함께 거론되어 그 특징을 드러낸다.
예술에서의 기는 기법 혹은 기교로서, 많은 세월동안의 학습 경험이 누적된 것이다. 도는 書畵 등과 관련지어 말하면 관련 예술의 원리와 규율, 최고의 경지 혹은 사물에 내재된 특징과 규율이다. 큰 틀에서 보면 기 혹은 기예를 도와 함께 이해하는 것을 道藝論 혹은 道技論이라고 부를 수 있다. 먼저 도와 예, 도와 기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고 아울러 先次적 입장에서 기가 도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이해가 있다. 주로 유가의 시각에서 보인다. 이 경우는 주로 도를 기 혹은 예와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의 道本藝末論과 예가 도가 지향하는 내용을 담아내는 차원일 경우 예를 긍정적으로 말하는 道則藝論과 같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道本藝末論의 경우는 주로 人品論이나 收養論적 차원에서 예를 玩物喪志로 본다. 이런 이해는 예와 관련된 행위에 대한 일정 정도 부정적인 생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예로 불리우는 범주를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 혹은 예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인식은 비록 예를 긍정적으로 보는 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도와 예는 일단 구분된다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다음 도와 예를 모두 강조하고 아울러 도와 기를 함께 중시하는 사유가 있다. 이른바 소식이 말하는 일종의 道技兩進 혹은 有道有藝적 사유다. 마지막으로 일단 최고의 경지로서 도를 설정하지만, ‘기가 도에 나아갈 수 있다’거나 ‘기 속에 도를 포함하고 있다’거나,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기는 도’라는 식의 인식이 있다. 기에 대한 이런 인식은 주로 莊子에 보이는데, ‘기가 도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일단 기보다는 도를 더 우선시 하는 사유에 속한다. 그렇다고 기를 賤技視하거나 末技視하는 사유는 아니다. 도리어 ‘기가 도에 나아갈 수 있다’혹은 ‘기 속에 도가 있다’는 언급은 기보다 도를 더 중시한다는 사유와 함께 기를 賤技 혹은 末技로 여기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다. 이런 점은 장자가 주장하며, 李贄는 장자의 기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켜 기에 대한 신성성과 자율성, 독자성을 부여하기도 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기를 중시하면서 ‘絶藝入神’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