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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31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49 - 192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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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克敦은 淸나라 사신으로 1717년부터 1725년까지 총 4차례 조선을 다녀갔던 인물이다. 3차 사행이 끝난 뒤, 조선 사행의 체험을 『東游集』으로 엮었는데, 이 문집에는 16題 30首의 시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아극돈의 조선 사행 체험 기록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 바로 『奉使圖』이다. 총 20폭의 그림으로, 아극돈의 『동유집』에 있는 시작품이 화폭에 모두 題詩되어 있다. 당시 청나라 화공 鄭璵가 아극돈의 4차 사행이 끝난 1725년 6월에 그린 것이다. 『동유집』과 『봉사도』에는 청나라 사신 일행을 대하는 조선의 국왕과 신하 및 백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모두 사신 일행을 극진히 영접하는 모습인데, 조선 국왕이 鞠躬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또한 청나라 사신들이 머무는 관소를 청나라의 풍속을 반영해 꾸미기도 하였다. 물론 청나라 사신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대 양국 간의 정치 외교적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아극돈은 자신의 시작품에서 조선을 ‘옛 봉토[舊封]’나 ‘東蕃’, 조선의 노래를 ‘夷歌’ 등으로 표현했고 箕子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상시시켜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유집』과 『봉사도』에는 당대 조선 풍습과 관련된 언급이 산견된다. 시작품에 보이는 ‘折風巾’이나 ‘大加’ 등은 고구려의 유풍인데, 아극돈 역시 이를 언급했다. 이는 중국에 전해졌던 조선 관련 풍속을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水利農業을 하는 농경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선을 두었지만, 고구려의 武事와 果下馬의 유풍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조선 여인의 복식과 道家나 佛家가 민간에 성행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여 이를 그대로 詩化 했다. 『봉사도』에도 이러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 『봉사도』를 그리는데 아극돈의 시작품이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아극돈의 시작품은 당대 조선과 청의 외교적 관계뿐만 아니라, 조선 풍습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더욱이 『봉사도』는 아극돈의 시작품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청 사신의 조선 기행 관련 유일한 그림 자료이다. 『봉사도』는 아극돈의 작품을 한 장의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아극돈의 시에 보이는 자잘한 소재 하나하나를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이는 사행 당시의 실제 광경이라기보다는 시작품에 무게를 두고 충실히 담아내는 과정에서 생긴 인위적인 안배로 보인다. 『동유집』이나 『봉사도』에 보이는 당대 조청 관계나 조선 풍속에 대한 인식은 청 사신의 일방적인 시선만이 존재하기에, 당대의 실제적인 것으로 간주하기에는 일정 정도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당대 한중의 정치 외교적 관계를 비록 청의 입장이지만 어느 정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각화 시켰다는 것은 양국 간의 관계를 극명하게 고착시킨 것으로, 이후 양국 간의 상호 인식과 지금의 한중 관계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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