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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철학연구회 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 제52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41 - 6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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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의 전통과 근대를 함께 살았던 옌푸라는 한 지식인의 사고 과정을 통해 중국의 근대성 문제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서양을 관찰하고 학습하고 체험했다. 중국에 돌아와서는 서양의 원리와 가치를 토대로 중국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했다. 만년에는 공자를 존경하고 유교 경전의 강독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그의 삶은 서양의 원리를 발견하고, 서양의 원리 속에 감추어진 문제를 인식하고, 중국의 가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원리와 가치를 찾아 고뇌하는 과정이야말로 그가 추구했던 중국의 근대성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옌푸는 언론 활동에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서양의 자유와 민주에 처음으로 감명을 받았던 시기에도 서양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자유, 민주, 진보, 과학, 공공성 등 서양의 학문적 성과로 이루어진 진리를 신봉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을 목도하면서 그는 서양의 원리와 학문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반사 작용으로 중국의 학문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였다. 분명 옌푸 연구자들이 말한 대로 그는 초기의 급진적 관점에서 보수적인 관점으로 변했다. 그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도 변했고, 서양 사회도 변했다. 중국에서는 옌푸보다 더 급진적인 서구주의자들이 등장했고, 서양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옌푸에게 서양은 사상적 모범이며 원리였다. 중국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모범이 되었고, 중국보다 근대문명의 폐해가 먼저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모범이었다. 서양 문명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유교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유교를 서양 문명의 대안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중국인의 아이덴티티는 유교의 경전 속에 있다고 보았다. 한편 서양 사회가 문제를 야기해도 서양의 학문은 여전히 그의 원리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원리의 진리성이었으며, 중국과 서양은 지리적으로 구획된 세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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