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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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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동양철학회 동양철학 동양철학 제4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85 - 21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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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당 역사 속에서 유학의 성인지도(聖人之道)가 점했던 상징적 지위의 변화는 공자 석전례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으며 이러한 공변(共變) 관계는 다음과 같이 세 단계를 거쳐 전개되었다. 먼저, 한대에서 ‘독존유술’ 정책 아래 성인지도에 대한 지속적인 담론과 태학 교육을 통한 제도화는 공자를 도통의 계승자로서 점차 국가 의례의 중요한 인물로 부상시켰고 궐리의 공자 제사를 국가사전화의 단계로 이끌었다. 다음으로 위진남북조 시기에 성인지도와 도통 관념은 각 왕조의 왕권을 강화하고 그 정통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를 보다 구체화하고 확장하기 위한 과정에서 공자 사제(私祭)가 공자 석전례(釋奠禮)의 형태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당대에 이르러서 통치자들은 성인지도를 국가가 인정한 정통 유학의 합법성 근거로 삼고 성인지도의 전승과 확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학자를 공묘에 종사하여 천하에 공표한다. 이로서 석전례는 성인지도의 진정한 전승, 즉 도통을 상징하는 의례가 되었다. 이후 당말에 한유(韓愈)가 『원도(原道)』를 지어 유학의 새로운 도통론을 제기하고 학파들 사이에서 다양한 도통 논의가 전개되면서 석전례의 향사 문제와 대상에 관한 많은 논쟁과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성인지도와 석전례의 공변 관계는 후대의 정치권력과 유학의 이념 및 사상의 관계 속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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