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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중국문화학회 중국학논총 중국학논총 제39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77 - 194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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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한반도에 남겨진 마조 신앙의 유적을 찾아보는 작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마조는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해양 보호신이다. 전라남도 완도군 동편 古今島에는 이순신 사당인 忠武祠이 있다. 충무사의 옛 이름은 關王廟이다. 정유란 때 명나라 수군이 조선 수군과 연합전선을 펴기 위해 고금도로 들어왔다. 이때 수군도독 陳璘은 부하 季金과 함께 관왕묘를 건립했다. 관왕묘의 신단 배열을 보면 중앙에 주신인 관우를 두었고, 동편에 三官大帝, 서편에 마조를 각각 두었다. 마조위패에는 당시 중국 민간에서 전해지던 봉호인 ‘護國佑民天妃聖母之位’라고 적혀있었다. 광동과 절강 해역은 마조 신앙이 성행한 지역이었다. 진린은 南澳에서 부총병으로 있을 때 천후궁에서 마조 신앙을 자주 접했고, 계금의 고향인 절강 송문에 명나라 때 세워진 마조묘가 적어도 3곳이 있었다. 진린의 손자 진영소가 배를 타고 고금도에 들어와 한동안 정착한 적이 있었다. 관왕묘 마조신단은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존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관왕묘가 철폐되면서 마조신단이 훼멸되었다. 해방 이후에 관왕묘는 충무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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