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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호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37집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49 - 96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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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후반 예안지역<SUB>禮安地域</SUB>에 포진했던 인물들은 문과 혹은 무과를 통해 발신했던 유교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인척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자제들의 중앙 진출을 추동했다. 그 중에서 서촌<SUB>西村(檟野村)</SUB>은 1472년 예안지역에서 최초의 문과급제자, ‘영춘인<SUB>永春人</SUB> 이성<SUB>李晟</SUB>’을 배출했다. 이성은 진성이씨 집안의 최초로 1498년 문과급제에 성공한 송재<SUB>松齋</SUB> 이우<SUB>李堣</SUB>(1469~1517)의 스승이었다.
16세기 전반, 예안에 새로 입향한 여러 성씨들은 기존에 쌓아왔던 가학전통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들의 자제를 어떻게 하든 문과에 급제시켜 중앙관료로 진출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는 길만이 향촌사회에서 자기 집안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제고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진정한 학자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때는『사서오경』이나 『성리대전<SUB>性理大全</SUB>』을 완숙하게 습득하거나 시부<SUB>詩賦</SUB>를 능숙하게 지어내는 일이 우선시되었다.
그런 가운데 서촌은 초계변씨가 김지로<SUB>金智老</SUB>의 사위가 되어 입향한 이래 여러 성씨들이 계속 입향함에 따라 독특한 지역문화를 만들어내었다. 서촌에 거주했던 김생명<SUB>金生溟</SUB>(1504~1577) · 박사희<SUB>朴士熹</SUB>(1508~1588) · 이완<SUB>李完</SUB>(1512~1596) · 류빈<SUB>柳贇</SUB>(1520~1591) · 윤의정<SUB>尹義貞</SUB>(1525~1612) 등은 ‘의리지학<SUB>義理之學</SUB>’을 지향하는 일단의 통일된 의식을 공유하고 서로 학문을 강론했다. 이를 ‘마곡 학단<SUB>磨谷學團</SUB>’이라 부르기로 한다.
16세기 예안 선비들의 학문성향은 퇴계<SUB>退溪</SUB> 이황<SUB>李滉</SUB>이 계상서당<SUB>溪上書堂</SUB>의 문을 열기 시작한 1551년을 기점으로 큰 폭의 변화를 보인다. 예안의 퇴계학파<SUB>退溪學派</SUB>는 주자의 학문을 ‘위기지학<SUB>爲己之學</SUB>’의 모범으로 삼았다. 『주자대전』나 『주자어류』가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어 주자의 학문세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러한 흐름의 선두에 서서 퇴계는 주자학문의 길잡이가 될 『주자서절요<SUB>朱子書節要</SUB>』를 편찬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주자 심학의 문제를 『심경<SUB>心經</SUB>』을 통해서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목차

요약
1. 서언
2.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3. 독서讀書강학講學저술著述
4. 이성李晟과 이우李堣
5. 변계손卞季孫과 이계양李繼陽
6. 마곡磨谷 학단學團
7.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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